3수 도전하는 WTO사무총장 선거전 '어게인 2006년될까'

입력 2020-10-05 15:14   수정 2020-10-05 15:19



"결선진출 가능성은 50%보다 조금 위로 보고 있다. 막판 지원이 관건이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결선 진출 가능성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5일 "일각에선 50% 이하로 전망하지만 현재 판세는 절반의 가능성 보다 높아졌다고 본다"며 이같이 분위기를 전했다.
1차 투표를 통과한 5명의 후보 가운데 2명이 결선에 진출하는 WTO 사무총장 선거전에 외교부·산업자원부 뿐 아니라 청와대까지 가세해 막판 세몰이에 나서는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석 연휴를 전후에 잇따라 주요국 정상들과의 전화통화, 친서전달를 통해 유 장관 지원유세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청와대는 각 대륙별로 표심 영향력이 큰 '거점국가'와 판세상 본선 진출에 키를 쥐고 있는 국가들에 대한 친서로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아 성사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통화에서 유 장관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며 러시아와 인접한 CIS국가들에 대한 동반지지를 유도했다.

문 대통령은 "유 후보가 통상 분야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추고 있어 WOT 발전에 최적임자"라며 지지를 당부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유 본부장에 대한 높은 평가에 공감을 표하며 "현 보호무역주의 타개와 WTO 신뢰 회복을 위해 협력해 나가자"고 답했다.

추석 연휴기간에 이뤄진 앙헬라 메르켈 총리와의 정상통화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지지를 이끌어냈다. 지난 1일 양 정상간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은 자유무역질서 속에서 성장했고, 다자무역체제의 수호와 발전이 WTO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면서 “유 본부장이 오랜 통상 분야 경력에 따른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만큼 WTO 발전 및 다자무역체제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는 최적임자”라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한국의 유명희 후보가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적임자로 보고 있다”며 예상을 뛰어넘는 '쿨한 답변'으로 화답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도 메르켈 총리의 답변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고 전했다.

유럽내 발언권이 강한 독일의 적극적 지지와 함께 최근엔 헝가리를 제외한 EU가 한국 후보와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세계은행 전무를 복수로 지지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더해졌다. 이런 가운데 당초 케냐의 아미나 모하메드 문화부 장관 지지로 입장을 정리하면서 EU와 다른 목소리를 냈던 헝가리도 최근 한국 정부와 주변국의 설득에 의견을 재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장관에게는 희소식이다.

문 대통령은 양국 정상이 상대국을 각각 국빈방문하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스웨덴의 뢰벤 총리에게는 마침 현지를 방문한 박병석 국회의장을 통해 친서를 전달하며 공을 들였다.

청와대는 오는 7일 결선투표까지 유 장관 지지를 당부하는 정상간 통화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날 저녁 브라질 대통령과의 통화도 WTO사무총장 지원 성격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귀뜸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30개국 이상에 서한을 이미 보냈고 각 대륙별로 영향력이 큰 정상에게는 직접 전화통화를 통해 유 장관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며 "결선 투표까지 시간이 많지 않지만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정부부처가 본격적인 지원에 뛰어든 국제기구 수장 선거는 2006년 유엔사무총장 선거전 이후 사실상 14년만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후보로 출마한 반기문 후보에 대한 미국의 불안감을 희석시키기 위해 정상회담을 적극 활용했다. 한미정상회담 후 비공개 오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제가 하나는 확실히 보장합니다. 반 후보는 확실히 친미주의자"라고 소개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노 전 대통령은 옆 자리에 앉은 로라 부시여사에게도 "우리 반 후보는 진짜 친미주의자입니다"라고 농담을 던져 양국 정상과 참석자들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임기 초반 '반미면 어떠느냐'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던 노 전 대통령이었지만 유엔사무총 선거전에는 철저히 실용주의로 접근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WTO사무총장 선거전은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판데믹 상황에서 치러지고 있다. 이전 국제기구 대표 선거전처럼 각국 정상들의 대면외교 설득작업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정상간 통화, 친서 등의 비대면 지원사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무총장은 4년 임기로 1회 연임이 가능하다. 세계무역분쟁을 중재하고 WTO에 관한 운영과 핵심 이슈를 협의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1995년, 2013년에 이어 세번째인 한국인 세계무역기구 수장 도전기가 '어게인 2006'을 재현할 지 주목된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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