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재정의 중요성을 잔뜩 강조하고 법에 명문화된 준칙을 만들겠다면서 5년 뒤에나 시행하겠다니, 건전재정에 대한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이번에도 또 ‘코로나 상황 지속’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그러면서 독일 등 3개국도 유예기간을 뒀다고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파악한 세계 92개 재정준칙 운용 국가의 대다수가 법 제·개정과 함께 시행하고 있다.
안 그래도 구속력이 약해 “이런 헐렁한 준칙을 뭐하러 만드느냐”는 비판이 나올 판이다. ‘국가채무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60% 이내, 연간 재정적자는 3% 이내로 한다’는 원칙은 세웠지만, 이 한도에서 벗어나도 ‘건전화 대책’만 세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3% 이내인 적자 한도도 사회보험이 포함된 통합재정수지 기준이어서 당장은 ‘재정안전 지킴이’가 되기 어렵다. 국제기준에 맞춘 것인지, 정부 발표대로 ‘한국형 준칙’으로 한번 만들어본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헌법이나 법률로 집행을 강제하는 재정준칙을 운용 중인 나라가 117개국이라는 국회 조사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느슨한 내용으로, 그것도 다음 정권이나 지키라는 식이라면 재정준칙을 만드는 이유가 뭔가. 준칙 제정을 요구하는 여론은 선심성 지출과 팽창 예산이 해마다 반복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채무에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공식 국가채무는 729조원이지만 공공기관 부채, 연금 채무를 포함하면 2198조원으로 이미 GDP의 115%에 달했다. 총부채 약 5000조원인 ‘부채 공화국’의 중심에 정부가 있는 것이다. 저(低)투자와 저성장, 경제활력 저하의 큰 원인이면서 결과이기도 하다.
‘면책·면피용’ 준칙이라면 굳이 제정할 이유가 없다. 지난달 국가채무 전망에서도 기재부는 2060년에도 GDP 대비 81%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곧이어 ‘경고’처럼 나왔던 국회예산정책처의 159% 전망과 비교되면서 ‘근거가 부실한 희망가’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재정준칙까지 부실하게 내놨다. 세제와 예산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기재부가 ‘기획과 재정’이라는 막중한 소임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법제화(국가재정법 개정) 과정에서라도 재정준칙의 구속력 강화와 조기 시행을 당부하고 싶지만, 거대 여당의 폭주와 기죽은 야당을 보면 그 또한 기대 난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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