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180도 다른 韓·美 정치권의 기업관

입력 2020-10-05 17:39   수정 2020-10-0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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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이 지난달 내놓은 ‘미국 선도 법안(America LEADS Act)’을 뜯어보면 놀라운 내용이 적지 않다. 중국을 겨냥한 대응 전략이란 설명이 붙었지만 파격적인 기업 지원 방안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기업 활력 예산의 규모가 상당하다. 미국이 산업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 10년간 3500억달러(약 400조원) 이상 쏟아부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상당액이 미국 꼬리표가 붙은 기업가와 제조업체, 근로자에게 투입된다.

첨단 기술 연구개발(R&D)엔 아낌없이 투자하도록 했다. 인공지능(AI)과 5G(5세대) 통신망, 양자역학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도 상당 부분 초점을 맞췄다. 미국 기업들이 반도체 부품을 자국 내에서 생산·조달할 능력을 키우는 데 행정부가 조력을 제공해야 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의회에 보고하라는 조항도 담았다. 민주당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계기로 친(親)기업 행보를 한층 강화한 것이다.
진보 美민주당도 "기업 지원"
감세정책을 선호할 뿐 정부 주도 산업에 예산 투입을 꺼려온 공화당도 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다. 중국에 하나씩 내주고 있는 제조업 일자리를 더 늦기 전에 되찾아 와야 한다는 위기의식도 한몫하고 있다. 제임스 리시 공화당 상원의원은 민주당 법안에 대해 “중국에 대항해 기업 경쟁력을 높여주는 전략은 특정 정당이 아니라 미국 전체의 문제”라고 호응했다.

여야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지난달 말 인텔 퀄컴 등 미 반도체 기업의 자국 내 생산을 유도하기 위해 25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법안에 합의했다.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에 공장이나 연구시설을 새로 지으면 최대 30억달러까지 지원하는 게 골자다. 국가안보상 고도의 기밀 유지가 필요한 생산 공정을 신설하면 국방부 등이 최대 50억달러의 개발 자금을 준다.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 TSMC 등에 뒤진 미세공정화 기술을 만회하기 위해 50억달러의 R&D 자금을 별도로 책정했다.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50%에 육박하는데도 의회가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선 정부·국회가 규제 강화
정부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10개월 내 1000만 개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고, 중국에서 10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되찾아 온다는 청사진을 지난 8월 발표했다. 이를 위해 기업을 대상으로 추가 감세 정책을 약속했다. 제약·로봇 등 필수 유망 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이 대표적이다. 이런 핵심 부문에선 실질적인 세부담이 ‘제로(0)’가 되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지원 대상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재집권하기 위해 내세운 집권 2기 경제 공약이다.

한국 내 상황은 이와 크게 다르다. 한국에선 매출 자산 등을 따져 일정 규모를 넘으면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게 일반적이다. 정부 예산으로 큰 기업까지 지원하는 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또 기업들의 조세 및 준조세 부담은 매년 늘고 있다.

국회는 실물경제 위기 속에서도 기업들을 옥죄는 규제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상법· 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기업규제 3법’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도 찬성하는 분위기다. 초강대국 미국이 자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올인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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