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저자인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세계 상위 1%가 차지하는 부가 세계 전세 부의 33%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더 크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부의 불평등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사진)는 이 같은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기회불평등이 없다면 자산 및 소득 불평등은 개인의 불성실이나 혁신의 과실을 투명하게 반영한 결과일 수 있다”며 “얼마나 기회가 공정하게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지가 좌파와 우파를 떠나 중요한 과제인 이유”라고 말했다. 그가 기회불평등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고 발전시킨 이유다.
주 교수는 개천용지수가 학력에서 가장 크게 악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포함한 49개국의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를 대상으로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가 4년에 한 번 조사하는 ‘수학 및 과학 학습 국제비교 연구’가 대표적이다. 아버지의 학력을 상중하 3단계로 나눠 수학 분야의 개천용지수를 산출했더니 1995년 21.80에서 2015년에는 82.23으로 네 배 가까이 뛰었다. 학력이 낮은 아버지를 둔 학생의 80% 이상이 자신의 자질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과학 과목에서는 개천용지수가 40.18에서 81.23으로 두 배로 상승했다.
성장환경과 사교육의 영향이 큰 과목일수록 개천용지수는 높게 나타났다. 2005년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 6908명의 성적을 3년간 분석한 2018년 보고서에서 영어 과목의 개천용지수는 아버지 학력을 기준으로 73.88, 부모 월평균 소득을 기준으로는 72.29를 나타냈다. 수학과목은 각각 70.96, 67.25였다. 반면 국어 과목은 아버지 학력 기준 56.83, 부모 소득 기준 51.15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학업성취도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직업과 낮은 소득 안정성으로 이어진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패널만으로 개천용지수를 산출했더니 급여 등 매월 일정한 소득을 올리는 항상소득이 40.96으로 비정기적인 소득을 모두 합친 일반소득(24.46)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개룡남·개룡녀’가 고소득자 대열에 들어서는 데 성공하더라도 직업 안정성 등은 떨어진다는 의미다. 주 교수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미국과 함께 급여 격차가 가장 큰 나라”라며 “교육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 기회불평등이 노동시장의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지며 소득 상승 등을 통한 계층 이동을 구조적으로 막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특별취재팀
노경목 경제부 차장(팀장), 최진석 건설부동산부 기자, 조미현 정치부 기자, 서민준·강진규 경제부 기자, 배태웅·양길성 지식사회부 기자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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