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산 공장이 없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인 퀄컴은 TSMC와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업체에 생산을 나눠 맡긴다. 최근엔 삼성전자가 TSMC를 제치고 퀄컴의 핵심 AP를 수주하고 있다. 차세대 프리미엄 AP ‘스냅드래곤 875’(가칭)를 최신 5㎚ 극자외선(EUV) 공정에서 생산하기로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전문가들은 TSMC의 허점을 파고든 틈새시장 공략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팹리스들은 그래픽처리장치(GPU), AP 등 제품 종류와 생산비, 성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파운드리업체와 공정을 정한다. 삼성전자는 유일하게 회로선폭(반도체 전류 흐름을 조절하는 게이트 간격) 8㎚ 공정을 가동 중이다. 대당 2000억원 수준인 EUV 노광장비를 쓰기 때문에 생산비가 비싼 7㎚ 공정을 활용하지 않고도 10㎚대 공정에서 생산되는 칩보다 작고 전력 효율성이 높은 제품을 원하는 고객사를 공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엔 패키징 기술력 향상에도 적극 나섰다. 패키징은 반도체를 배치하고 연결하는 반도체 후공정이다. 파운드리업체는 패키징 같은 후공정 서비스도 고객사에 제공한다.
보통의 패키징 공정에선 중앙처리장치(CPU) 등 연산을 하는 로직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를 한 칩에 양옆으로 배치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로직과 메모리 반도체를 위아래로 배치하는 ‘3D 패키징’과 상·하단 칩을 전극으로 연결하는 TSV(실리콘관통전극) 기술을 담은 ‘엑스큐브’ 공법을 공개했다. 전체 반도체 면적을 줄이면서 고용량을 구현할 수 있고, 데이터 전송 속도도 높일 수 있다. TSMC 역시 3D 패키징 기술 ‘SoIC’를 개발 중이지만 삼성전자보다 상용화가 늦을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의 대규모 주문으로 TSMC가 다른 업체의 생산 일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 등도 삼성전자에 긍정적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팹리스들이 ‘복수 밴더’ 전략을 쓰면서 TSMC와 삼성전자를 경쟁시키고 있는 상황”이라며 “TSMC가 아직 우위지만 삼성전자도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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