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도공이 빚은 그대로…無心의 '텅빈 충만'

입력 2020-10-06 17:18   수정 2020-10-07 06:11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싸늘한 사기지만 살결에는 따사로운 온도가 있다.” 순백의 바탕색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은 백자 달항아리를 화가 김환기(1913~1974)는 이렇게 예찬했다. 미술사학자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不定形)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 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작가가 지금도 달항아리를 만들고, 그리는 이유다.

도예가 강민수(49·사진)는 다른 도자기는 거의 제작하지 않고 백자 달항아리만 20년 이상 만들어왔다. 경기 광주 쌍령동 가파른 산기슭 작업장에서 강원 양구에서 구해온 백토로 달항아리를 빚는다.

작업 과정은 쉽지 않다. 17~18세기 경기 광주 분원관요(分院官窯)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달항아리는 대개 높이가 40㎝를 넘는 대호(大壺)였다. 물레로 한 번에 제작하기 어려워 위와 아래의 몸통을 따로 만들어 붙여야 한다. 이 때문에 반듯한 원형으로 비례를 맞추기 어렵고 작품마다 둥근 형태가 다르게 나온다. 강민수는 40~60㎝ 이상의 큰 작업을 하기에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부정형이 달항아리의 매력이다. 완전히 둥글지 않고 꾸밈없는 자연미가 무심한 멋을 자아낸다. 작업장 옆에 강민수가 직접 전통식으로 만든 오름가마에는 달항아리 8점이 들어간다. 그는 직접 껍질을 벗긴 강원도 소나무로 혼자서 불을 땐다. 조선시대 도공이 하던 그대로다.

작품의 완성도가 결정되는 가마 앞에서는 언제나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유백색이 잘 나올까, 한쪽이 너무 처지거나 재가 많이 붙어서 앉지는 않을까, 몇 점이나 성공할까 하는 걱정과 기대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것마저 마음 쓰지 않으려고 한다. 잘해야 한다는 욕심마저 버리려는 것이 잡티가 끼지 않은 달항아리 본연의 멋임을 일찌감치 깨달아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만 최선을 다하며 자족하는 게 그의 자세다. 그렇지 않다면 작업을 이어나가기 어렵다. 한 달에 제대로 건지는 작품은 두세 점에 불과하다. 600만~1000만원인 작품값을 감안하면 호사를 누리기 어려운 처지다.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7일 개막하는 ‘강민수의 달항아리’ 전에는 그가 이렇게 제작한 달항아리 30여 점이 나온다. 지난 3년간 세상에서 떨어져 수도하듯 홀로 빚어온 작품들이다. 화랑 1~2층 전시 공간이 달덩이 같은 항아리로 가득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전시를 통해 ‘도예가 강민수’를 꾸준히 알려온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강 작가의 모든 생활과 작업은 달항아리에만 맞춰져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시대에 달항아리를 위해 스스로를 격리하며 만든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어느 산속에서 사기를 굽던 장인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애호가는 그의 작품에 대해 “달항아리의 교과서 같다”고 했다.

진심이 담긴 그의 작품은 세속적 잡다함이 없고 맑아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 미국 뉴욕 티나킴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었을 땐 작품이 거의 다 팔렸을 정도다.

단국대 도예학과를 나온 그는 어린 시절 앓은 열병으로 청각장애를 지니고 있다. “달항아리만 빚으라”는 대학 시절 은사의 조언에 따라 한우물만 파왔다. 그런데도 가마에 장작을 넣을 때면 “이번에는 또 어떤 작품이 나올까” 하고 설렌다고 한다. 전시는 오는 17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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