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본사가 있는 서울 서초타워 앞에는 2년 전부터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보암모)’이라는 단체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보암모의 거친 집회 방식은 보험업계에서 유명하다. 사옥 2층에 있는 삼성생명 고객센터를 점거했고, 밖에서는 장송곡을 틀었다. 국회와 금융감독원을 찾아서는 “삼성생명이 암 환자에게 보험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보암모 공동대표인 이모씨가 삼성생명을 상대로 낸 암 보험금 청구 소송은 최종적으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
삼성생명 설계사로 일한 적이 있는 이씨는 1996~2003년 이 회사 암보험에 네 건 가입했다. 그는 2017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한편 요양병원에도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갈등이 시작된 것은 이씨가 청구한 5000여만원의 ‘요양병원 입원비’ 지급이 거부되면서다. 삼성생명은 이씨에게 암 진단금과 대학병원 치료비로 9000여만원을 지급했다. 다만 요양병원은 약관상 ‘암의 치료가 직접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법원도 암의 후유증이나 합병증을 가라앉히기 위한 입원은 ‘직접 치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2010년 대법원 판례를 고수했다. 2심 재판부는 “약관이 명확하지 않으면 고객에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면서도 “보험금 지급 사유를 너무 넓게 인정하면 보험료 수입과 보험금 지급이 균형을 잃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보험은 상품구조가 복잡한 특성상 모든 금융업종 가운데 소비자 민원이 가장 많다. 업계에서 ‘보암모 사례’가 어떻게 결론 날지에 주목해 온 이유다. 삼성생명으로서는 보암모 요구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면 오랜 분쟁을 간단하게 잠재울 수 있다. 그러나 약관을 거스르는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없다는 판단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 측은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암 입원비 지급 대상을 계속 확대해 왔다”면서도 “이씨 사례는 대법원 판단까지 나온 상황에서 보험금을 지급하면 배임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재심을 청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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