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들은 '일'이 고픈데…덫이 돼버린 최저임금·주52시간

입력 2020-10-06 17:43   수정 2020-10-07 02:46


한 방송사에서 계약직으로 영상편집을 하는 김모씨(26)는 돈 한푼이 아쉽다. 지난해 결혼한 아내와 생계를 꾸려 나가기 위해서다. 더 많은 급여를 위해 오래 일하고 싶지만 연장 근무를 할 수 없다.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이다. 김씨는 “일을 더 할 체력과 여유가 있어도 시간만 되면 퇴근해야 하고,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할 수도 없다”며 “함께 일하는 20명 중 대부분이 일을 더 하더라도 돈을 더 벌고 싶은 사람들이지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주 52시간 근로제는 2018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폭은 2018년 이후 3년간 32.8%에 달한다. 근로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목표로 도입된 이들 정책이 저소득층의 계층 상승 노력을 발목 잡는 역설이 초래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은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근로소득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근로조건 개선에 따른 혜택은 대기업 정규직에 집중되며 계층 간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올해 2월 통계청이 내놓은 지난해 가계동향조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2015년 143만원에서 지난해 132만원으로 7.9% 줄었다.

특히 근로소득이 64만원에서 45만원으로 28.5%나 감소했다. 저소득층이 주로 종사하는 비숙련 일자리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크게 감소한 데 따른 결과다. 최저임금이 두 자릿수로 인상(10.8%)된 첫해인 2018년 5인 미만 영세사업장 일자리가 24만 개 사라졌고, 최근 3년간 소득 하위 20%의 가구당 취업자 수는 14.8% 급감했다.

저소득층이 이같이 어려움을 겪는 동안 소득 상위 20%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16.1% 늘었다. 2015년 671만원이던 상위 20%와 하위 20% 간 가구소득 격차가 4년 만에 813만원으로 21.2% 뛴 것이다. 그만큼 하위 계층이 상위 계층으로 도약할 가능성은 줄었다. 윤성주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벌어진 소득 격차는 계층 이동성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한번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다시 근로소득자가 되는 것도 좀처럼 어려워 관련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좌절 깊어져
일자리 시장에 진입해 본격적으로 계층 이동 사다리에 올라타야 할 젊은이들의 좌절감이 특히 컸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구모씨(26)는 일이 몰릴 때는 한 주에 60시간 이상 일해야 하지만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주 52시간 이상 일했다는 것 자체가 법을 어기는 것이 되면서 회사에서 구조적으로 이를 인정하기 불가능해서다. 학원강사 일을 하던 지난해에는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피해를 봤다. 늘어난 시급에 부담을 느낀 학원 측이 구씨에게 이전보다 더 적은 강의시간을 배정해서다. 구씨는 “시급이 낮더라도 일자리가 많은 게 좋고, 일을 더 하더라도 제대로 보상받는 게 중요하다”며 “근로자를 위한다는 정책에 피해만 본 셈”이라고 말했다.

경기 수원의 경기대 인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김모씨(22)는 최근 일자리를 잃었다.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은 하루 최대 10시간까지 일하던 카페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근무 시간이 조금씩 줄더니 작년에는 1주일 근무시간이 14시간으로 감소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주휴수당 부담이 높아진 업주가 아르바이트생의 근무시간을 수당 지급 기준(주 15시간) 이하로 조정한 데 따른 결과다. 김씨는 “인건비 부담에 불경기가 겹치면서 카페가 올해 8월 폐업했다”며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는데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걱정”이라고 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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