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노벨문학상은 미국 시인 겸 작가인 루이즈 글릭(77·사진)에게 돌아갔다. 역대 열여섯 번째 여성 수상자다. 미국 여성 문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1993년 소설가 토니 모리슨 이후 27년 만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8일 “절제된 아름다움을 시적 목소리로 담아내며 개인의 존재론적 보편성을 확고히 전달한 글릭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림원은 “명징함으로 특징 지을 수 있는 그의 시는 어린 시절과 가족의 삶, 부모와 형제, 자매와의 밀접한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며 “그의 저작 가운데 《아베르노(Averno)》(2006)는 하데스에게 붙잡힌 페르세포네의 신화를 몽환적이고 능수능란하게 해석했다”고 호평했다.
글릭은 1943년 미국 뉴욕의 헝가리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사라로렌스칼리지와 컬럼비아대에서 공부했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앓아 온 거식증 치료 때문에 대학을 중퇴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치료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시를 익혔다. 여러 기관에서 교사로 경력을 쌓으며 작품을 발표했다. 현재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거주하며 예일대 영문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글릭은 12권의 시집과 수필집, 시문학 이론서 등 총 18권의 작품을 출간했다. 1968년 《퍼스트본》으로 데뷔했고 1975년 발표한 두 번째 시집 《마슈랜드의 집》으로 자신만의 특이한 목소리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2년 발표한 《야생 아이리스》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3년 미국 계관시인이 됐다. 2014년 발표한 최신작 《성실하고 덕망 있는 밤》으로 미국에서 매년 뛰어난 문학작품을 쓴 작가에게 주는 문학상인 미국 도서상을 수상했다. 2016년엔 미국에서 최고의 인문학자에게 주는 ‘미국 인문학 메달’을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부모와 형제자매 간 긴밀한 관계, 그리스 신화에서 받은 영감, 정신적 트라우마 극복 등이 주요 주제다.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토대로 무거운 주제를 날카롭고도 간결한 유머로 표현하며 새롭게 승화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데르스 올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은 “글릭의 시는 몽상과 망상에도 귀를 기울이고, 자기 고백에만 그치지 않으며 그 누구보다도 자아 망상에 맞서고 있다”고 말했다. 양균원 대진대 교수는 2009년 현대영미시연구 논문을 통해 “글릭은 자아의 직접적 분출이 아니라 작가가 나름대로 추구하는 자아의 통제를 통해 세상과 포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연성을 가졌다”고 평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상금 1000만크로나(약 13억원)와 함께 노벨상 메달·증서를 받는다. 시상식은 매년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수상자에게 개별적으로 수여될 예정이다.
은정진/이미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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