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확히 7시간 만에 꼬리를 내렸고, 시장은 반기며 돌아섰습니다.
7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다우는 530.70포인트, 1.91% 상승했고 S&P 500지수는 1.74%, 나스닥 지수는 1.88% 올랐습니다. 전일 트럼프의 갑작스런 협상 철회 선언에 급락했던 하락폭을 모두 만회하고 그보다 더 상승했습니다.
트럼프는 전날 저녁 9시54분 트위터로 "의회는 당장 항공업계 지원과 소기업에 대한 급여보호프로그램(PPP) 단독 지원 법안을 승인해야한다. 이들 지원은 기존 부양책 중 쓰지 않고 남아 있는 돈으로 할 수 있다. 당장 사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한 시간 뒤엔 "1인당 1200달러 수표 지급안도 가져온다면 바로 서명하겠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듣고있나"는 트윗을 띄웠습니다.
포괄적 부양책이 아니라 그 중 몇 개만 선별적으로 가져오면 즉시 집행하겠다는 얘기였습니다. 협상 중단을 선언하던 오후 2시47분과는 완전히 달라진 자세였습니다. 이에 전날 밤부터 다우선물 등 주가지수 선물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침에도 펠로시 의장(민주당)에게 수표 지급 법안 등을 서두르라고 압박했습니다.
트럼프는 왜 갑자기 자세를 바꿨을까요?
전날 협상 철회를 밝힌 즉시 시장이 폭락한데다, 부양책 타결 실패에 따른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 탓으로 보입니다. 일주일 전 뉴욕타임스 여론조사에서 72%에 달하는 유권자가 추가 부양책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난 상황에서 갑작스레 협상을 중단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에 옥스포드이코노믹스는 재정부양책이 없다면 4분기 성장률이 5%포인트 더 낮아질 수 있다고 했고, 심리적으로 소비자와 투자자들을 위축시켜 경제 충격은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닐 카시카리 미네아폴리스 연방은행 총재는 "더 이상의 부양책을 공급하지 않는 건 산불이 산을 다 태우게 그냥 놔두는 것이다. 결국 모두를 태울 것이고 우리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이런 심각한 결과를 발생할 것이다"라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BTIG은행은 부양책이 없으면 S&P 500 지수가 7% 더 하락할 수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그러면서 "선거 전 90일간 증시가 올랐을 경우 현직 대통령이 85.7% 승리했지만, 반대로 9~10월에 하락하면 6번의 대선 중 6번 모두 현직 대통령이 패배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곧 시작될 3분기 어닝시즌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S&P 500 기업들의 순이익은 3분기 약 21% 감소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지난 2분기(30.6% 감소)보다 훨씬 나아진 수치입니다. 하지만 부양책이 사라진 상황이라면 4분기 성과는 다시 불확실합니다. 기업들은 부양책 없이는 좋은 실적 전망을 밝히긴 어려울 겁니다. 투자자들은 과거 실적보다 향후 실적 상승을 기대하기 때문에 3분기 어닝시즌은 그냥 잊힐 수 있습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CNBC에 출연해 "내 생각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제 한 말은 '우리가 거대한 규모의 부양책을 통과시키기엔 아직 너무 멀다. 대법관 임명도 있고 지금은 대선이 4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걸 다 끝낼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경기 회복이 거대한 지원책에 달려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기업을 위한 PPP론 등을 연장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항공사를 돕는 것과 학교를 돕는 것, 그리고 백신 개발과 확보에 돈을 쓰는 것도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어쨌든 트럼프가 물러서면서 협상판이 다시 차려지는 형국입니다. 이런 선별적 부양책이 대선 전에 통과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펠로시 의장은 협상 의지를 밝혔고, 이날 아침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전화로 논의했습니다. 펠로시 의장측은 "므누신 장관이 항공사 지원 법안을 요청했고, 펠로시 의장은 데파지오 법안을 다시 들여다볼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민주당의 피터 데파지오 의원은 지난주 금요일 하원에서 급여지원 등을 포함한 항공사 지원 법안 통과를 시도했었습니다.
하지만 PPP론에 대해선 논의가 없었고, 1인당 1200달러씩 나눠주는 방안에 대해선 펠로시 의장이 "트럼프가 선거를 위해 자신의 서명이 적힌 부양책 수표를 가계에 보내는 것만 원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민주당은 그동안 1200달러 지원안과 지방정부 지원을 연계해왔습니다.
펠로시는 ABC 방송에서 "트럼프는 끔찍한 실수(협상 철회)에서 나오고 있는데 그건 자신의 행동에서 정치적 불리함을 본 때문"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현재로선 250억 달러 규모인 항공사 지원책만이 확실하며, 이건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듯 남은 불용예산에서 지원할 수도 있다. 나머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습니다. 골드만삭스도 "항공사 지원은 점점 더 가능해보이지만 PPP론의 경우 가능하긴 하지만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고 예측했습니다.
1조6000억 달러(공화당)~2조2000억 달러(민주당) 수준으로 논의되던 부양책 규모가 250억 달러로 찌그러질 판인데, 뉴욕 증시는 왜 어제 내린 것보다 더 올랐을까요?
월가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이미 바이든으로 승리가 기울었고, 이번 협상 철회 사태가 이를 더욱 확실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민주당의 압승은 더 많은 부양책을 예고하기 때문에 바이든 트레이드(바이든이 승리한다고 생각해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것)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이날 '당장의 부양책 없이도 한 달 이상 버틸 수 있다"고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어쨌거나 더 많은 부양책이 곧 실시될 것이란 얘기입니다. 모건스탠리의 앤드류 시츠 전략가는 "오늘 부양책을 얻지 못할 경우 내일 선거에서 승리하는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대선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은 지난 9월 시장이 조정을 겪은 뒤 이미 주가에 대부분 반영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낙관론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로 최근의 순환매 장세 및 가치주 상승을 들었습니다. S&P 500 가치주 지수는 2주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나스닥 100 지수는 박스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시트 전략가는 "이는 시장이 (이미 민주당 집권에 따라) 더 많은 경기 부양책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에버코어ISI도 "트럼프의 협상 철회는 민주당의 백악관과 의회 싹쓸이 가능성을 높여줬다. 이게 현실화되면 민주당은 더 많은 부양책을 강행할 것이다"고 예상했습니다. 무디스애널리틱스는 경제학자 대상 조사를 인용해 민주당이 대선뿐 아니라 의회까지 장악하는 게 트럼프 재집권보다 미국 경제 회복에 더 좋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시장에서는 트럼트가 도대체 왜 자신에게 불리한 협상 철회 결정을 내렸는지 각종 추측이 나옵니다.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인 미치 맥코넬이 소속 의원들을 설득할 수 없다고 우겼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또 △에이미 코니 바렛 연방대법관 임명이 부양책 협상보다 우선순위여서 그랬다는 관측 △바이든 차기 당선자에게 좋은 경제를 넘겨주기 싫어서 그랬다는 설 △코로나 치료를 위해 복용한 스테로이드 약기운에 그랬다는 설도 나옵니다. 정치매체 더힐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펠로시 의장이 "스테로이드가 생각에 영향을 준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언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날 일라이릴리가 미 식품의약국(FDA)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의 긴급사용 승인을 신청한 것도 상승 원인으로 꼽힙니다. 릴리의 항체치료제 'LY-CoV555'는 코로나19 감염 초기 환자와 증세가 심하지 않은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금 3상 임상중인 유력한 백신 3개의 결과가 11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사실 지금 같은 상황을 금세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부양책이 아니라 백신 개발입니다. 집단면역은 쉽지 않습니다. 코로나가 만연한 미국의 경우에도 항체를 가진 사람은 10~15%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집단면역 수준인 60%에 달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게다가 자연 면역력은 금세 떨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국 백신이 나와야하고, 그 백신은 강력한 면역력을 갖출 수 있어야합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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