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베트남] 중국의 '경제 우산'에 종속되는 베트남

입력 2020-10-09 10:46   수정 2020-10-09 10:50

베트남 수도인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국경도시 랑선(L?ng S?n)성(省)까지 가는 길은 채 3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79년 2월17일 중국 인민군이 국경을 넘어 랑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당시, 이제 막 베트남을 통일한 호찌민 정권은 모골이 송연했을 것이다. 중·월 전쟁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된 두 공산주의 체제의 대립은 동남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베트남은 기원전서부터 자신들을 억눌렀던 중화 민족을 생래적으로 증오하고 싫어했다. 공산주의 기치를 같이 들었을 뿐, 국경을 맞댄 두 나라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베트남이 당시 생존 필수품인 석유를 중국이 아니라 먼 길을 에둘러 소련으로부터 공급받았다는 사실이 양국의 관계를 증명한다.

중월 전쟁 이후 양국은 애증의 관계를 이어왔다. 정치적으로는 타협과 갈등을 반복했다. 중국의 굴기(屈起)는 베트남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중국이 남중국해라 부르는 베트남 동해를 둘러싼 갈등은 동남아 최대 화약고다. 베트남이 북중부 동해안에 있는 최초의 석탄화력발전소를 미국 기업에 맡긴 건 과거 소련으로부터 석유를 공수해왔던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양국 공산당의 이해관계를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당과 당의 연대 의식은 민주주의 국가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갖고 있다. 수백㎞에 달하는 중·월 국경선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카지노들이 즐비하다. 정글이 우거진 국경도시에서부터 바닷가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도박의 천국들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최대 고객은 중국인이었다. 중국의 지하 자금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는 물론이고 베트남으로까지 흘러와 ‘세탁’되곤 했다. 중국과 베트남의 고위 정·재계 인사들의 ‘검은 돈’은 국경을 넘나들며 출처를 지웠다.

국경선의 풍경은 양국의 경제적 관계가 얼마나 긴밀한 지를 보여준다. 랑선성 동당(đ?ng đ?ng, 同登)역은 중국의 국경도시인 핑샹역까지 철도가 연결돼 있는 베트남 최북단 철도역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거쳐갔던 곳이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동당역에서 국경 검문소까지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다. 검문소 바로 인근엔 꽤 규모가 큰 시장이 들어서 있다. 중국에서 넘어 온 이 세상 거의 모든 싸구려 잡화들이 차고 넘치는 곳이다. 7월 초에 기자가 갔을 무렵엔 국경 폐쇄로 인적이 거의 끊겨 있었다. 상인들은 마지못해 노점을 열어놨지만, 파리만 들끓었다.

코로나19 이전 동당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는 건 동네 마실 가는 것처럼 아주 수월했다. 랑선에 거주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간단한 신고만으로 중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차량으로도 갈 수 있고, 걸어서도 갈 수 있다. 국경선엔 흔한 철책선도 없다. 주변이 험악한 산악 지형이라 동당의 관문을 통하지 않고선 달리 갈 길이 없어 자연이 천연 철책인 셈이다. 2년 전쯤 중국 훈춘성에서 육로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간 적이 있다. 그 곳의 국경 관문은 삼엄하기 짝이 없었다. 버스를 탔는데 거쳐야 할 관문만 서,너개였다. 검문 때마다 승객들은 모든 짐을 가지고 내려야 다시 검사를 받아야했다. 국경선을 넘었어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가기 위한 길은 마치 자동차는 오지도 가지도 말라는 듯 엉망이었다. 곳곳에 싱크홀처럼 커다란 구멍들이 패어 있다. 험악한 중·러 관계를 국경선의 풍경이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최근 해외 뉴스에 토픽으로 나오는 중국과 인도의 피튀기는 국경 분쟁도 양국의 관계를 상징한다.

베트남이 중국과의 지정학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국경선을 활짝 열어놓은 이유는 단 하나다. 베트남 수출입의 상당 부분은 동당-핑샹 라인에서 발생한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 지는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중국에 있던 공장들이 베트남으로 이전하면서 베트남은 최대 수혜국으로 부상중이다. 내년 GDP 성장률이 8.1%로 예상될 정도다. 중국 기업들도 베트남을 새로운 전진기지 삼아 줄줄이 이동 중이다. 중국 기업들은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자국 인건비가 급등하자 베트남으로 눈을 돌렸다. 외국인직접투자(FDI)를 통해 신발, 의류, 가방 업체들이 입성했다. 요즘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중국 기업들은 ICT 기업들도 상당수다. 코로나19는 양국의 경제적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몇 안되는 플러스 성장이 예상되는 국가다. 중국이 베트남의 최대 수출처로 부상한 건 2009년부터다. 베트남이 수입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도 중국이다. 2016년 이래 바뀐 적이 없다. 올해 대(對)중국 수출 비중은 5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존재는 베트남의 경제 구조라는 측면에선 엄청난 핸디캡이다. 산업화를 이루려던 순간에, 이미 중국이란 거대한 호랑이가 활개를 쳤다. 이런 관점에선 한국은 운이 좋았던 편이다. 한국의 산업화 시기에 중국은 ‘잠자는 호랑이’였다. 중국도 베트남처럼 무일푼으로 개혁개방을 시작했다. 1960년대 대약진운동을 거치며 대기근을 겪었고, 문화대혁명으로 지식의 단절을 겪었다. 하지만 중국은 아주 중요한 장점을 갖고 있음이 드러났다. ‘축적의 시간’을 ‘공간의 축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중국 기업들은 10억 명의 내수를 바탕으로 빠른 시간 내에 경험을 쌓았다. 베트남은 볼트와 너트조차 중국산을 수입했다.

베트남의 최대 산업인 의류 봉제 분야만해도 중국 의존도가 엄청나다. 봉제 산업의 핵심인 제직, 염색 공장의 경우 베트남 기업은 영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베트남산은 중국산에 비해 값도 비싸다. 중국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이뤄 가성비 좋은 제품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형 염색 공장들은 친환경 설비를 갖추고도 베트남 기업에 비해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베트남 정부가 이제서야 자국 섬유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은 한 물 지나간 기계, 설치, 장치들을 베트남으로 헐값에 팔아 넘겼다. 베트남은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화력발전소 등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 기계 설비 탓이다. 과학기술부가 2017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기업 중 90% 가량이 매우 낙후된 기술을 사용 중이며, 수입된 기계와 공장 라인의 76%가 1950, 60년대 기술이라고 평가됐다. 응우옌 람 타잉((Nguyen Lam Thanh)이라는 랑선성 인민위원은 “베트남이 기술 쓰레기장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급기야 베트남 정부는 2017년 6월에 낙후된 기술, 기계 이전을 금지한다는 법안을 발표했다. 감가상각 기간이 10년 미만인 기계 및 설비만 수입할 수 있도록 하고, 베트남의 전문가가 직접 현장에 가서 검증하도록 의무 조항을 만들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베트남에서 가장 발달한 분야는 중고 시장이다. 고장 난 자동차, 오토바이, 기계, 설비들을 몇 번이고 고쳐서 다시 쓴다. 지게차 시장만 해도 전체 규모는 태국과 비슷한 규모다. 하지만 베트남의 신형 지게차 시장은 태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나머지는 중고 지게차가 차지하고 있다. 기형적일 정도로 중고 시장이 커지면서 이로 인한 부작용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회의 성장 가능성을 갉아먹는다는 점에서다. 이로 인해 한국 등 외국 업체들이 피해를 입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하이퐁에 있는 A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A사는 산업공단에 들어설 공장을 건설하는 회사다. 지게차 수요가 많은 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신형 모델을 구매하는 게 이득이지만, 이 회사의 구매 담당 직원으로 인해 몇 년간 중고 지게차만 구매해왔다. 베트남 담당직원은 이런 식으로 회사를 설득했다고 한다. ‘지게차 딜러로부터 싸게 물건을 들여올 방법을 알고 있다. 부품 조달과 수리 서비스를 안 받는 조건으로 단가를 낮춰 달라고 하면 된다’. 이 직원은 자신과 잘 알고 지내는 로컬 수리업체에 일감을 맡기고, 이를 대가로 뒷돈을 챙기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고장이 잦은 지게차를 고치느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맞고 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데 특화된 베트남의 산업 구조는 베트남산(産) 제품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현상과 연결돼 있다. 삼성전자가 2008년 하노이 인근 박닌성에 휴대폰 제조 공장을 지은 지 올해로 12년째인데, 삼성에 납품하는 베트남계 협력사는 포장지 제조업체 정도다. 삼성이 한국에서 기존 협력사를 데려온 영향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베트남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협력사로부터 부품을 조달할 때 삼성의 기준으로 99점은 0점과 똑같다”고 말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의미다. 베트남식 사고는 ‘99점이면 100점과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식이다.

1986년 도이머이(개혁 개방) 이후 30여 년이 흘렀지만, 베트남은 자신들만의 제조업 역량을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경험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삼성이 자체 기술로 TV 브라운관을 처음 생산한 게 1970년이다. 현대자동차는 포니1을 1972년 양산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D램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건 6·25전쟁의 포화가 멈춘 지 30년이 지난 1983년이었다. 그 원인을 곰곰히 따져 보면, 중국에 대한 경제 예속이 자리잡고 있다. 이래저래 중·월은 애증의 관계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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