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업(業)의 본질

입력 2020-10-08 17:51   수정 2020-10-09 00:15

이건희 삼성 회장이 계열사 대표들에게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 중 하나가 ‘업(業)의 본질’에 대한 철저한 이해였다. 그게 없으면 사업 성공의 필수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다고 봤다. 1980년대 후반 호텔신라의 한 임원에게 “호텔업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던 일화는 지금도 자주 회자된다. 그 임원이 “서비스업”이라고 답하자 “다시 생각해보라”고 숙제를 줬다. 이 임원이 해외 호텔들을 연구한 뒤 “입지에 따라 성패가 갈리고, 새 시설로 손님을 끌어야 해 부동산업과 장치산업에 가깝다”고 보고하자 그제서야 이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회장은 “업의 본질을 모르면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천착(穿鑿)은 기업을 통해 인류의 삶을 바꾸고 번영을 이끈 ‘위대한 기업인’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사업의 본질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던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자산운용사는 투자자들의 수익을 위해 수수료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인덱스펀드를 개발한 존 보글 뱅가드그룹 창업자 등은 평생 자신의 신념을 지킨 혁신가들이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아마존의 위상을 미국의 국가인프라 수준으로 끌어올린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CEO)도 그렇다. “10~2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빅 아이디어(싼 가격, 빠른 배송, 넓은 선택폭)’를 포착해 실현시켜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기업인들은 잠이 오지 않을 정도라도 한다. 위기극복 경험이 일천한 젊은 기업인이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위대한 ‘선배’들처럼 업의 본질을 좇아 정진하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더 깐깐하게 좋은 상품을 발굴하고, 좋은 가격에 파는 게 사업의 본질이다. 2015년 창업 후 ‘컬리 상품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쌓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매출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둔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37)가 한경 주최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페스티벌 2020’에서 강조한 얘기다. 업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런 신념을 지키는 경영자들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그것이 성공의 확률을 더 높이는 열쇠이기도 하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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