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신뢰 연습

입력 2020-10-08 17:53   수정 2020-10-09 00:08

신뢰는 얼마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스위스에서는 “신뢰는 벌어야 하는 것”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 등 많은 나라에서 신뢰란 개인적인 좋은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누가 신뢰할 만한지, 그리고 개인적인 관계가 상대를 신뢰할 만큼 안정적인지 언제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신뢰에 대해 한국과 스위스는 뚜렷한 차이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가치 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만하다”는 문장에 대해 스위스에서는 조사 참가자의 50%가 동의한 반면, 한국에서는 30%가 동의했다.

경험이 많지 않은 경영자는 본인이 통제하고 있지 않은 상황을 종종 불편하게 생각하곤 한다. 나는 이런 불편한 감정을 아주 잘 알고 있을뿐더러 지난 몇 년간 이 감정과 싸워왔다고 말할 수 있다. 대표로 일하는 처음 몇 년간 나는 ‘내가 월급을 받으니 모든 일을 세세하게 컨트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직원들보다 내가 모든 것을 더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조직 운영에서 통제를 내려놓기 위해서는 먼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또 경영자로서 충분한 자신감이 있어야 했다. 신뢰는 결국 내가 믿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수반한다.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 게 있다면 애초에 신뢰라는 것이 필요하지도 않을 터다.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을 신뢰하는 경영자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와 직원을 성과나 결과 중심의 측면에서 관리한다. 더 이상 직원들이 몇 시간 일하는지, 엄격한 근무시간을 잘 지키고 있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결과에 관심을 갖고 집중한다. 일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고 조언을 해주되, 부가가치로 이어지지 않는 불필요한 일들로 직원들이 골머리를 썩지 않도록 해준다. 그리고 직원들이 스스로 가장 좋은 과정을 찾아가도록 하고,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세세한 것까지 통제하는 방식)는 피하려고 한다.

코로나19가 활개를 치기 시작했을 때 모든 사람이 갑자기 집에서 일을 해야 했고, 놀랍게도 나는 아주 오랜만에 또다시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갑자기 매일, 그리고 비정기적으로 직원들과 만나던 일상이 사라지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통제와 신뢰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데 몇 주가 걸렸다. 그런 측면에서 재택근무는 신뢰를 형성하는 연습에 제격이었다.

이제 뉴노멀은 1주일의 며칠은 집에서, 나머지 며칠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됐다. 우리 모두가 이 상황을 기회로 삼아 서로를 더 신뢰하는 연습을 해보기를 소망한다. 결국 신뢰는 기업에서나 개인의 삶에서나 중요한 일이지 않은가. 신뢰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꿀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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