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노벨문학상 수상자 루이즈 글릭의 번역시 읽고 싶다면?

입력 2020-10-09 11:47   수정 2020-10-09 11:49

202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77)은 미국에서 문학적 입지가 탄탄한 문인이다. 일시적이지만 열정적 존재로서의 꽃을 이야기한 1992년 대표작 ‘야생 붓꽃(The Wild Iris)'으로 이듬해 퓰리처상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상을 받았고 이후 미국도서상, 미국비평가협회상, 불링겐상, 월러스 스티븐스상 등 미국의 주요 문학상을 석권했다.

정은귀 한국외국어대 영문학과 교수는 글릭의 수상에 대해 "코로나19라는 대위기 속에 예측 불가능한 대전환의 시기를 맞아 모두가 고립과 단절, 불안 속에 있는 상황에서 글릭이 어린 시절부터 삶의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고, 시를 통해 이를 넘어서는 복원력과 회복력을 자연과 일상 속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 많은 나라에선 예상을 깬 수상자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한국에서는 생소한 시인일 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거의 연구가 되지 않았다. 국내에 번역된 시집이 단 한 권도 없다. 국내 다수 영문학 교수들 대부분이 “난 잘 모르는 시인”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심지어 “처음 듣는다”는 영문학 전문가도 있었다. 그나마 2009년 시인인 양균원 대진대 영문과 교수가 발표한 '자아의 부재에서 목소리를 내다-루이즈 글릭'이라는 현대 영미시 연구 논문에서야 글릭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단기간에 그의 작품들이 번역돼 나오기 힘든 상황에서 시인 글릭을 알고 싶어하는 국내 독자들에게 단비같은 책이 있다. 바로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 <마음챙김의 시>(수오서재)다.

지난달 17일 류 시인이 출간한 이 책엔 글릭의 시 '눈풀꽃(Snowdrops)'이 실려 있다. 고독, 상실, 트라우마, 고립, 죽음, 배신 등으로부터 받는 고통을 극복하고 삶을 복원하는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한 시다.

그의 시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겨울이란 계절적 시어가 자연 세계로 등장한다. 그 안에서 땅에 묻히지만 다시 봄은 오고 시인은 그 곳에서 인생의 죽음, 질병, 트라우마, 재난 같은 것들을 통과해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긍정의 씨앗을 발견한다.

특히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나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와 같이 일상 속에서 지친 우리 삶을 추스르게 하는 강력한 시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류 시인은 이 시를 "인생이라는 계절성 장애를 겪으며 잠시 어두운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시"라고 평가했다.

10대 시절 거식증을 심하게 앓아 정서적인 혼란으로 7년동안 심리치료를 받으며 정상적인 학업을 받지 못했던 시인에게 시는 '삶을 잃지 않으려는 본능적 노력'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의 시집에는 이 시처럼 삶의 고독과 고통 속에서도 소생하려는 생명의 의지를 표현하는 시가 많다.

그런 시적 감각 때문인지 평소 류 시인은 페이스북과 책을 통해 글릭의 시를 종종 소개해 왔다. 류 시인은 “글릭은 상처받기 쉬운 육체와 정신을 소유하고 고난과 시련으로 얼룩진 시간들을 살았다"며 "하지만 그는 가슴이 원하는 진실한 것, 인간의 여정에서 상실과 화해하고 삶을 포용하려는 의지를 고백 투의 운율에 실어 노래한다"고 설명했다.

류 시인은 2018년 펴낸 <시로 납치하다>(더숲)에도 글릭의 시 '애도(Lament)'를 소개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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