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흑인 아티스트가 아니다. 단지 아티스트일 뿐이다.”
스무 살 무렵 미국 뉴욕 화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불과 8년 만에 3000여 점의 드로잉과 회화, 조각 작품을 남긴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는 이렇게 강조했다. 그런데도 그에게 ‘검은 피카소’ ‘흑인 낙서미술가’ 등의 수식어가 붙는 것은 가난, 불행한 개인사 등과 함께 ‘흑인’이라는 선천적 조건이 예술의 자산이 됐기 때문이다.
서울 신천동 롯데월드타워 7층의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 전은 그의 예술 세계 전반을 조명하는 자리다. 거리·영웅·예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회화, 조각, 드로잉, 세라믹, 사진 작품 등 15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뉴욕 브루클린의 흑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1977년부터 친구 알디아즈와 함께 맨해튼 곳곳에 스프레이로 저항적인 메시지를 담은 그라피티를 남겼다. ‘흔해 빠진 낡은 것’이라는 뜻의 ‘SAMO(SAME OLD shit)’에 저작권 기호 ⓒ를 붙인 ‘SAMOⓒ’는 이때 만든 그들만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해 거리 생활을 했던 바스키아는 1980년대 초 대규모 그룹전 ‘더 타임스스퀘어 쇼’와 ‘뉴욕/뉴웨이브’ 전에 참여하면서 미술계의 슈퍼 루키로 등장했고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었다.
이번 전시는 바스키아의 출생과 성장,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거리미술가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아티스트로의 급부상, 아버지처럼 의지했던 거장 앤디 워홀의 갑작스런 죽음에 따른 충격,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을 훑으며 예술세계를 함께 보여준다.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바스키아의 예술세계는 텍스트의 반복적인 쓰고 지우기, 자유로운 드로잉이 만들어 내는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에서 시작된다. 그는 텍스트와 드로잉을 토대로 스프레이, 오일파스텔, 크레용, 유화와 아크릴 물감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즉흥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의미를 표현해 냈다.
바스키아는 영웅을 기리고 꿈꿨다. 그는 만화, 영화, 광고, 백과사전, 성경, 신화, 음악, 대량생산으로 넘쳐나는 상품 등에서 발췌한 다양한 요소를 버무려 사회적 억압과 편견에 저항하는 영웅을 표현했다. SAMO 시절부터 등장하는 왕관과 저작권 기호, 공룡 등은 불의에 저항하는 영웅의 모습이자 자신의 모습을 대변한다. 특히 가시면류관을 쓴 채 후광을 띤 인물은 바스키아 자신처럼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유색인 영웅의 표상이다.
거장 워홀과의 협업작 5점도 소개된다. 승승장구하던 바스키아는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이끌어줬던 워홀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고 삶의 의지를 상실했다. 이듬해 코트디부아르로의 이주를 불과 엿새 앞두고 약물 복용 과다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불과 스물여덟 살이었다. 전시는 내년 2월 7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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