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공산주의에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가 무척 힘들다. 리온스 자신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던 덕분에 그는 1930년에 서방 기자로선 처음으로 스탈린과 대담했다. 당시 스탈린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던 터라 그의 대담 기사는 ‘세기의 특종’이 됐다.
그러나 러시아의 실상을 알게 되자, 그는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꼈다. 특히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우크라이나 기근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것이 그의 양심에 걸렸다. 긴 번민 끝에 그는 전향해서 공산주의 체제의 실상을 세상에 알렸다. 그것으로 그의 저널리스트 경력은 끝났다. 그는 러시아 정부만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한 미국 언론계로부터 따돌림과 공격을 받았다.
사실을 보도하는 저널리스트가 전향하는 것도 그렇게 힘들다. 공산주의 세력의 첩자가 전향하는 것은 물론 훨씬 더 힘들다. 우리에게 익숙한 휘터커 체임버스의 행적에서 이 점이 드러난다. 그는 첩자들이 빼돌린 정보를 러시아에 넘기는 연락원이었다. 전향하기로 결심한 그는 러시아의 암살을 피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오랫동안 잠적했다. 뒤에 자신이 접촉했던 미국 정부 내의 러시아 첩자들에 관해 증언하자, 그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반면에, 그가 폭로한 첩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앨저 히스는 영웅이 됐다. 자신의 정체와 활동에 관한 증거가 아무리 확실해도 그는 자신이 첩자였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1960년대 월남전에 대한 반감 때문에 세계적으로 좌파가 득세하자, 그는 반공주의의 희생자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미국 지식인들의 우상이 됐다.
이처럼 전향은 어렵다.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경력을 포기해야 하고 비방에 시달려 명예를 영구적으로 잃는다. 때로는 목숨이 위험해진다. 이런 현실적 손해를 감수하려면, ‘양심의 가책’이라는 심리적 비용이 엄청나게 커야 한다. 전향으로 치러야 할 비용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유난히 크다.
지난 7월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태영호 의원은 이인영 후보자에게 사상적 전향에 대해 물었다. 자신이나 후보자나 한때는 열렬한 주체사상 신봉자였는데 자신은 전향을 선언했지만, ‘전대협’을 이끌었던 후보자는 전향을 선언한 적이 있느냐는 얘기였다. 후보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주체사상을 신봉한 적이 없다’는 요지의 ‘모범답안’을 내놨다.
북한을 탈출한 외교관답게 태 의원은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 통일부 장관에겐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북한에 대한 경각심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은 오히려 태 의원을 거세게 공격했고 후보자의 사상에 대한 질의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현실적으로는, 좌파 학생단체를 이끌었다는 이 장관의 행적 자체가 문제가 된다. 북한을 담당하는 외교부서이므로, 통일부는 남북한 사이의 정보 교류가 핵심 임무다. 그가 통일부를 관장하는 한, 남북한 사이의 정보 교류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북한 정권이 그런 전력을 지닌 통일부 장관을 어떻게 대할까 상상해보라. 실제로, 통일부를 경유한 정보에 잡음이 많이 섞일 가능성이 크고, 사람들이 그럴 가능성을 감안하므로 진정한 정보도 쓸모가 줄어든다.
취임하자마자 이 장관이 서둘러 내놓은 정책들은 하나같이 설익어서 잡음만 일으키고 폐기됐다. 아마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10월의 이변’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를 기용한 현 정권의 의도와 계산이 무엇이었든, 이제 그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조난한 우리 국민을 북한군이 사살하고 시신을 그 자리에서 불태운 만행 때문에, 남북한 관계가 갑자기 험악해졌다. 자연히, 진정한 정보의 통로가 더욱 절실해졌다. 감당할 수 없는 임무를 이 장관의 등에서 벗겨주는 것이 정권에도 본인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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