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립고등학교 가운데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버지니아주 토머스제퍼슨(TJ)과학고가 입학 제도를 추첨 위주로 바꾸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 등 아시아계 편중 현상을 줄이고 흑인·히스패닉 학생에게 더 기회를 주자는 취지지만 성적이 아니라 ‘운’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게 공정하냐는 반론도 많다.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청이 지난달 15일 TJ과학고의 신입생 선발 방식 변경안을 낸 게 논란의 발단이다. 현행 제도는 철저히 성적 중심이다. 중학교 내신과 입학시험(수학·과학·영어), 에세이, 교사 추천서를 토대로 성적을 매겨 매년 500명가량을 뽑는다.
교육청의 변경안은 이를 바꿔 일정 학력 수준을 충족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역 안배를 고려해 추첨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인종적 다양성 확대’다. TJ과학고의 신입생 비율은 아시아계가 70%, 백인이 20%가량이고 히스패닉과 흑인은 극소수다. 버지니아주의 한국계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며, 한국계 비율은 약 10%다.
스콧 브라브밴드 교육감은 “현재 TJ과학고의 학생 비율은 페어팩스카운티 학군의 학생 비율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교육청은 추첨제가 도입되면 신입생 비율이 아시아계 52%, 백인 29%, 흑인 8%, 히스패닉 5%로 바뀔 것으로 예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올해 미 전역에서 확산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교육청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교육당국은 인종 문제와 함께 부모의 경제력 및 ‘입시교육’이 학생 비율을 좌우하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브라브밴드 교육감은 최근 주민설명회에서 “TJ과학고 입시 준비에 (학생 1인당) 1년에 1만~1만5000달러(약 1150만~1700만원)를 쓴다는 보고서도 있다”고 지적했다.
학부모와 재학생, 동문들은 입학제도 변경을 놓고 양분됐다. 한 주민은 주민설명회에서 “지금 인종 비율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학부모는 “지금까지 입학시험을 준비해왔는데 갑자기 제도를 바꾸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발했다. 한 학부모는 “그나마 시험 성적이 가장 공정한 객관적 잣대 아니냐”고 했다. 추첨제가 확대되면 TJ과학고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선 입학제도 변경에 반대하는 서명자가 3000명을 넘기도 했다.
반발이 커지자 페어팩스 교육청은 다시 절충안을 내놨다. 500명 중 100명은 에세이 평가를 통해 성적으로 뽑고 나머지 400명은 추첨으로 선발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결정권을 쥔 페어팩스 교육위원회는 지난 8일 입학시험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입학시험 전형료 100달러도 없애기로 했다. 하지만 추첨제를 전면 도입할지, 부분 도입할지 등에 대해선 결론을 유보하고 11월까지 수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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