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위원회는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유전자 가위’ 기술의 선구자인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교수와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들은 DNA의 원하는 부분을 자를 수 있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개발했다. 노벨위원회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생물체의 DNA 중 원하는 부위를 변형함으로써 유전병 치료의 꿈을 실현시켰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꿈처럼 보였던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병 치료 시도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선천성 희귀망막질환인 레버선천성 흑암시는 세계적으로 10만 명당 3명 정도 발생하는 유전질환이다. 출생 시 또는 출생 직후에 실명을 일으킨다. 환자 중 16% 정도가 ‘CEP290’이라 불리는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망가진 CEP290 단백질을 만든다. 그럼 빛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망막의 광수용체가 기능을 못하게 돼 시력을 잃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법은 없다.
올해 3월 미국의 생명공학회사인 에디타스메디신은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의대 교수 연구진과 함께 유전자 가위를 망막에 전달해 망가진 CEP290 단백질을 정상 단백질로 바꾸는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임상이 성공한다면 환자의 실명을 회복할 수 있는 혁신 신약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눈에 전달된 유전자 가위는 다른 부위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부작용도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낭성 섬유증, 겸상 적혈구 빈혈증 등은 유전자 전체에서 단 하나의 특정 염기가 잘못돼 발생하는 대표적인 유전질환이다. 특히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변형되는 겸상 적혈구 빈혈증은 특정 위치에 존재하는 하나의 티민(T)이 아데닌(A)으로 바뀌어 발생된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보고에 따르면 염기 하나의 변이에 의해 발생되는 유전질환의 수는 1만 가지가 넘으며, 신생아 100명 중 1명은 선천적인 유전질환을 가지고 태어난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이런 유전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다.
2013년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수석연구위원을 비롯한 세계 여러 그룹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인간 세포 DNA의 원하는 부위를 절단해 인위적으로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하지만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가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망가뜨리는 기능은 뛰어나지만 망가진 유전자를 고치기 위해 사용하기는 힘들었다.
그 후 2016년 염기교정 유전자 가위 ‘베이스 에디터’가 개발됐다. 베이스 에디터는 DNA를 잘라서 무작위로 변이를 일으키는 유전자 가위와는 달리 특정 위치에 있는 염기를 다른 종류의 염기로 바꿔준다. 베이스 에디터에는 시토신 염기교정 유전자 가위와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 가위가 있으며 시토신 염기교정 유전자 가위는 특정 위치에 있는 시토신(C)을 티민(T)으로 바꿔주고,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 가위는 특정 위치에 있는 아데닌(A)을 구아닌(G)으로 바꿔준다. 하지만 염기 교정 유전자 가위는 시토신(C)을 티민(T)으로 바꾸거나 아데닌(A)을 구아닌(G)으로 바꾸는 것을 제외한 다른 변이를 유도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라임 에디터’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2019년 개발됐다. 프라임 에디터는 DNA의 원하는 위치에 모든 종류의 염기변이를 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 염기를 삽입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 프라임 에디터 기술을 이용하면 이론적으로 유전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의 약 90%를 정상 유전자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이처럼 유전자 가위 기술은 다방면에 적용 가능한 기술이다. 2018년 미국국립보건원에서 유전자 가위 기술 개발을 위해 190만달러(약 2200억원) 투자를 결정했다는 것은 이 기술이 지닌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기초과학연구원의 김진수 단장과 연세대 의대의 김형범 교수와 같은 유전자 가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 가위 기술의 원천 특허를 가지고 있다. 또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여러 기업이 있다. 앞으로도 유전자 가위 분야에 대해 공격적이고 꾸준한 투자가 이뤄진다면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로써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