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처럼 자신이 살아온 기억을 다양한 방법으로 후대에 남긴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무생물체인 지구도 자신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을 남긴다. 화산지역의 지층대 절단면을 보면 화산 분화의 역사를 쉽게 알 수 있듯 말이다.
사람도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의 기억이 ‘생명의 설계도’로 알려진 유전자에 기록돼 있다. 다양한 유전병은 대부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에 그 원인이 있다. 유전자 해독 기술의 발전으로 자녀가 어떤 유전병으로 고통받게 될지는 조만간 모두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태어나 살아오면서 겪은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환경이 원래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를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를 후성 유전학이라고 부르는데, 놀라운 점은 후성 유전 상태가 부모에게서 자손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의 한 대학병원 연구에 의하면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은 트라우마 관련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고, 불안 장애를 일으키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많이 분비한다고 한다.
또 최근 발표된 스웨덴 웁살라 지역의 다세대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 이전에 친할아버지의 식량 공급 상태를 보면 손자의 사망률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데, 특히 암으로 인한 사망률과 관계가 깊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같은 유전자를 가진 털 색깔이 노란 아구티 생쥐 모델에서도 입증됐는데, 영양과 환경에 의해 털 색깔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이들 연구는 유전자-환경의 상호작용이 세대에 걸쳐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불러올 새로운 시대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변화가 예상된다. 실제로 정치, 경제, 사회, 보건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이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유엔이 발행한 ‘코로나19 및 정신건강에 대한 정책 요약’을 보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염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고립, 가족 구성원의 상실, 소득 감소 및 실업 등으로 우울증과 불안 증상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고통이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다음 세대까지 유전자에 기억돼 전달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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