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전세 대란을 해결하겠다면서 24번째 부동산 규제를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이후 전세난이 더욱 심화되면서 홍남기 부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면밀히 챙기겠다는 점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싸늘하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 방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시장을 옥죄면 부작용만 더 커질 수 있다”며 규제를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표준임대료나 전월세상한제 등을 예상하고 있다.
1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전세가격 안정을 위한 추가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전월세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필요하면 추가 대책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제8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는 "신규로 전세를 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 "전세가격 상승요인 등에 대해 관계부처간 면밀히 점검·논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전세난 추가 대책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현재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장 관계자들은 그간 ‘시장과열이 있는 곳은 반드시 규제한다’는 정부의 태도를 봤을 때 추가 대책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만약 추가 대책이 나온다면 유력하게 거론되는 안은 표준임대료나 전월세상한제를 신규계약까지 확대하는 규제책이다. 이 밖에도 세입자에게 전세계약갱신권을 한번 더 부여하는 ‘2+2+2’ 제도나 월세로의 전환을 돕는 월세 세액공제 확대 등이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현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은 무조건 규제에 집중된다고 볼 수 있다”며 “다음에 나올 정책도 공급 대책보다는 전세가격을 통제하는 식의 방법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어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대책까지 내놓지는 않더라도 시행규칙 개정을 통한 임대차법 보완은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세입자가 나갈 의사를 밝혔는지 여부를 확실히 해두는 이른바 '홍남기 방지법'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 8월 말 경기도 의왕시 아파트를 파는 계약을 맺었다. 이후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서 새 집주인이 잔금을 못 치르는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수인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곤란한 상황에 됐다.
국토부는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입법예고할 방침이다. 기존 세입자가 계속 살기로 했는지, 이사를 결정했는지 등 정보를 명확하게 표기하도록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 등을 손 보게 된다.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된 이후 기존 세입자의 변심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매매거래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정부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 포기를 밝혔다면, 퇴거해야 한다. 세입자가 의사 표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갈등이 커졌다. 개정되는 시행규칙에는 이러한 기준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한 네티즌은 “집값은 올려놓고 전세가도 올려놓고 다 올려서 아무도 안들어온다고 전세 값 못 준단다…이게 나라입니까”라며 격한 표현으로 전세가격 상승에 대해 비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현 정부의 부동산대책 방향성에 의구심이 든다”며 “지난 20여 차례 부동산 대책의 슬로건은 항상 ‘집값안정’을 외쳤지만, 실상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집값 안정보다는 오히려 집값을 어느 정도 올리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영등포구에서 전세를 구하고 있는 30대 직장인 박모 씨(33)는 “주택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과 거래량이 결정되는 재화 중 하나인데 지금 정부는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해 시장 기능을 교란시키고 많은 부작용을 초래했다”며 “집값, 전세난 등을 해결하지 못할 거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장을 내버려뒀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와중에 부동산 업계에서는 24번째 대책의 내용을 전망한 사설 정보지(지라시)가 나돌아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이 지라시에는 '전세금에 대한 과세', '투기과열지구에서의 9억원 이상 주택 대출 금지' 등의 출처를 알 수 없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문가들은 "그만큼 추가 대책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우려가 큰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앞으로 나올 규제가 지라시에 담긴 내용 외엔 남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냐"고 짚었다.
앞서 정부·여당은 임대차법 개정을 밀어붙인 바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전셋집 급감,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 급등을 우려했지만 소용 없었다. 홍남기 부총리는 8월 “임대차법이 안착하면서 시장이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지난달 국회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이 함께 마음을 모아서 극복하면 전세 가격도 점차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이 같은 대책에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매매·전세가격은 여전히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8주 연속 0.01% 오르고 있다.
전세가격도 마찬가지다. 상승폭은 다소 축소됐으나 무려 68주간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전세난은 외곽지역을 넘어 경기, 인천 등 수도권으로 번지고 있는 중이다. 급기야 강서구 한 아파트 단지의 전셋집을 얻기 위해 10여 팀이 줄을 서고 제비 뽑기를 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가을 이사철을 맞아 안그래도 부족하던 전세가 임대차3법 이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희귀한 매물이 됐다”며 “6·17, 7·10 대책에 이어 7월 말 임대차3법이 나올 때까지 매번 집값이 오르고 전세 매물이 사라졌는데 또 대책을 내놓으면 앞으로 문제가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세입자들의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안혜원 /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