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근대 세계를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이다. 모더니즘 사상은 과학이 기술을 낳고, 사회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보면 과학은 기술혁신과 무관했다. 과학적 발견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약 무기나 궁전 건축기술 개발과 무관했고, 네덜란드 상업시대에 목재를 사용한 조선술이나 설탕 정제업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산업혁명 시기의 증기 추진식 공장 역시도 과학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런 현상을 과학사학자 L. J. 핸더슨은 “증기기관이 과학에 진 빚보다 과학이 증기기관에 진 빚이 더 크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기술을 경제성장으로만 연관 지어서는 부족하다. 기술 변화가 동반하는 사회·정치·문화의 변화 또한 경제성장만큼이나 중요하다. 수치화하거나 수학적 모형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인이다. 기술과 사회·문화의 변화는 장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잠재력을 분출하기 때문이다. 상업시대에 대서양을 가로지른 설탕·노예 무역이나, 제국주의 시대의 원주민 총기학살, 나치 정권 시대 엔지니어에 의해 설계된 독가스실 등을 생각해보면 기술의 영향력은 단지 경제성장이나 자원의 효율적 사용보다는 그 영향력이 훨씬 광범위함을 알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 전보와 철도, 증기선과 같은 원거리 통신과 교통망 기술이 발전하자 경쟁국들도 앞다퉈 제국주의에 뛰어들었다. 증기와 전기로 해외 재산 관리에 장벽이 됐던 거리의 문제와 불안정한 통신의 문제가 해결되고, 열대지방의 풍토병 문제가 해결되자 제국주의 식민지 구축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사업이 된 것이다. 이처럼 전기, 철도, 증기선, 새로운 치료제 등의 혁신기술은 제국주의 출현의 핵심이 됐지만, 이들 기술의 상용화가 제국주의를 낳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식민국가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기업가, 엔지니어와 식민지 관료에 의해 선택되고 개발된 결과이다.
이는 기술에 대한 접근성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떠올리게 한다. 사회목표와 상호작용하는 수단으로서 기술을 이해했다면, 기술에 대한 접근이 얼마나 수월한지 여부가 사회 변화에 얼마나 발맞출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시대 영국의 어떤 공식문서에도 영국은 산업국가로, 인도는 영국의 전속시장이자 농업국가로 남아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단지 기술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을 통제한 결과였다. 한편, 기술 접근성은 기술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기술이란 포장지만 벗기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가공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기술은 사회·문화적 장벽을 넘을 때 발생하는 상호작용에 의해 발전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강압적인 권력구조 대부분이 폭넓은 기술혁신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와 기업, 일반 국민 모두가 기술이 단지 효율성의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문화 전반과 상호작용하는 요소임을 이해할 때 디지털 전환이라는 근본적인 변화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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