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의 소기점도 호수 위에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반짝이는 작은 구조물이 떠 있다. 스테인리스 구조물과 투명 홀로그램으로 마감한 유리로 만든 이 집은 보는 이의 각도와 햇빛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내부에는 방문객이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물결 모양의 마루를 놨다. 파코 슈발·장 미셸 후비오 등 해외 작가 4명이 설계한 작은 예배당 6번 ‘감사의 집-바르톨로메오’다.
신안군은 지난해부터 증도면의 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딴섬을 잇는 ‘기적의 순례길’ 12㎞ 구간에 12곳의 작은 예배당을 짓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해 올여름 완료했다. 국내외 작가 10명이 참여해 만든 예배당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작품마다 건강·생각·그리움·생명평화·행복·감사 등 주제도 다양하다. 한두 명이 들어가면 적당한 내부는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기도와 명상의 공간이다. 순례길과 독특한 예배당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기점&소악도’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다.
1000여 개의 섬이 있는 ‘천사(1004) 섬’ 신안이 ‘예술 섬’으로 주목받고 있다. 작가들이 순례길에 설치한 작은 예배당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주요 섬마다 하나 이상의 미술관·박물관 등을 운영하는 ‘1도(島) 1뮤지엄’ 아트 프로젝트로 일본의 나오시마를 능가하는 예술 섬으로 만들겠다는 것.
1도 1뮤지엄 프로젝트는 신안군의 여러 섬에 박물관 9곳, 미술관 9곳, 전시관 2곳, 공원 4곳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목포에서 다리를 건너면 가장 먼저 만나는 압해도의 저녁노을미술관을 비롯해 흑산도의 새조각박물관·박득순미술관·철새박물관, 자은도의 1004섬 수석미술관과 세계조개박물관, 암태도의 에로스서각박물관, 비금도의 이세돌바둑박물관, 하의도의 천사상미술관, 증도의 갯벌생태전시관, 안좌도의 세계화석광물박물관 등 11곳은 이미 완공돼 운영 중이다.
신안 출신인 우암 박용규 화백의 작품 기증을 계기로 2014년 개관한 저녁노을미술관은 연평균 15만 명 이상 관람하는 예술 명소다. 박 화백의 기증 작품 126점을 전시 중인 상설전시실과 특별전시실을 갖췄다. 2층 카페에서 조망하는 서해 낙조가 압권이다.
자은도 양산해변 인근의 뮤지엄파크는 축구장 70배의 면적을 자랑한다. 수석미술관, 조개박물관, 신안새우란전시관, 바다휴양숲공원, 해송숲 오토캠핑장 등을 갖췄다. 지난 7월 문을 연 수석미술관은 2500여 점의 수석을 교체 전시하는 미술관과 강원 영월에서 실어온 2700t의 정원석, 분재, 야생화 등으로 조성한 수석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8월 개관한 조개박물관에는 임양수 전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장의 기증품을 중심으로 3000여 종, 1만1000여 점의 희귀조개와 고둥 등을 전시 중이다. 조개로 만든 기기묘묘한 형상의 작품이 감탄사를 자아낸다.
유리공예미술관과 현대미술관 등도 뮤지엄파크에 들어선다. 현대미술관은 국내 굴지의 갤러리에서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져 기대를 높이고 있다.
황해교류역사관(압해도), 전통한선박물관(도초도), 조희룡미술관(임자도), 인피니또뮤지엄(자은도), 대한민국 정치역사공원(하의도), 동아시아 인권평화미술관·한국춘란박물관(신의도), 장산면 작은미술관(장산도)과 안좌도의 군도형(플로팅)미술관 등은 추진하고 있고, 지도의 자수박물관과 자은도의 복합 문화관광타운은 계획 중이다. 조각가 박은선과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 강남 교보타워 등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참여한 인피니또뮤지엄은 2024년 완공될 계획이다.
신안군은 신설 문화재단을 통해 미술관 박물관 등의 기획전과 특별전 등을 다양하게 마련할 예정이다. 소재와 주제는 무한하다. 신안은 예부터 해상교역의 길목이었다. 국내에서 해저유물이 가장 먼저 인양된 곳도 신안이다. 표류와 관련한 콘텐츠, 유배 문화와 관련한 스토리, 섬 특유의 민속원형도 풍부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중신학자 서남동 목사, 독립운동가 장병준 선생 등 명사들과 김환기를 비롯한 예술가도 많다. 조선 후기 매화 그림의 대가 조희룡은 신안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 시절 《자산어보》를 썼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신안은 섬 면적(656㎢)이 서울(605㎢)보다 넓은데도 인구는 4만2000여 명에 불과하다”며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1도 1뮤지엄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인이 찾는 문화 거점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신안=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