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 소믈리에(35·사진)는 구멍을 최대한 작게 뚫어 코르크 마개를 가장 빨리 뽑아냈다. 다른 경쟁자와의 격차를 크게 벌린 순간이었다. 프랑스 농식품부가 주최하는 이 대회에서 최 소믈리에는 올해 처음 1위의 영예를 안았다.
그가 소믈리에의 길을 걷게 된 건 와인 애호가였던 부친의 영향이 컸다. 고교 졸업 후 처음 마신 술도 아버지가 권한 와인이었다. 2005년 충북대 천문학과에 입학한 최 소믈리에는 군 제대 후인 2010년 무작정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어 한마디 하지 못했지만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에 가야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해엔 하루에 3~4시간만 자면서 프랑스어 공부에 매진했다. 1년 뒤 프랑스어 공인인증 시험 DALF에서 대학 수업이 가능한 최상위 수준인 C1 레벨을 획득했다. 어학 실력을 갖춘 뒤 프랑스 부르고뉴의 와인 대학 CFPPA에서 소믈리에 과정을 이수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유학파 소믈리에들과 비슷하다. 그는 여기에 ‘포도밭 농부’란 이력을 하나 더 추가했다. 소믈리에 과정을 끝내고 양조 책임자 과정을 밟았다. 최 소믈리에는 “포도 재배와 양조를 배우면 와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집 근처 와이너리에 일자리도 구해 포도밭 농사꾼으로 일했다. 3년 예정했던 프랑스 유학 생활은 5년으로 길어졌다. 그는 “포도밭에서 일하느라 손은 거칠어졌지만 다양한 토양에 뿌리내린 포도나무의 생육을 이해한 것은 큰 힘이 됐다”며 “이번 대회의 난제였던 코르크 마개 따기에 성공한 것도 양조장에서 코르크가 어떨 때 쉽게 갈라지는지를 관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귀국 후 그는 서울 삼청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두가헌’에서 부지배인으로 5년간 근무했다. 올 들어 서울 한남동 프렌치 레스토랑 ‘그랑아무르’ 지배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소믈리에는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홈술, 홈파티 영향으로 커지는 와인 시장에서 소믈리에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최 소믈리에가 우승한 한국 소믈리에 대회는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 정부가 정식 인증서를 발급하는 데다 국내 대회 가운데 역사가 가장 길어 권위가 높다. 그는 앞서 이 대회에서 두 차례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