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인수합병(M&A) 대어 중 하나로 꼽히는 두산인프라코어 거래에 산업은행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가 지원군으로 나서면서 사모펀드(PEF)업계에서 도는 관전평이다. 20여 년 전 골드만삭스가 진로를 샀다가 파는 과정에서 IB 업무의 ‘종합예술’을 한국 금융시장에 선보였던 것을 이번에 산업은행이 두산그룹 거래로 재현하려는 것 아니냐는 ‘뼈 있는’ 농담이다. 골드만삭스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부도에 몰린 진로에 투자해 1조원 이상의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 진로의 부실채권(NPL)을 매입한 이후 2005년 하이트맥주에 3조4000억원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채권·자기자본(PI)투자·M&A 자문에 이르는 IB 업무에서 파생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거래를 성사시켰고, 이는 국내에서 IB 업무의 ‘교과서’가 되다시피 했다.
PEF업계에선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놓고 산업은행도 이런 행보를 따르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번 거래를 계기로 산업은행 차원에서 먹거리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가령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그룹 컨소시엄에 대출(인수금융)을 주선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주채권은행으로 두산그룹 사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만큼 이번 거래를 산업은행 M&A 컨설팅실의 자문 성과로 쌓는 ‘부수입’도 있다. 날 선 이야기들이 시장에서 나올 만큼 이번 KDB인베스트먼트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참여는 M&A업계에서 여러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매각이 외견상으론 두산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이지만 의사결정은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과의 협의와 보고 절차를 거치고 있다. 한쪽에선 매각 절차를 관장하는 산업은행이 다른 한쪽에선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초반부터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골드만삭스도 진로 거래 당시 “자문을 맡으면서 회사에 투자했다”는 이해상충 논란에 시달렸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KDB인베스트먼트의 의사결정과 자사(산은)는 별개”라고 강조했지만 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두산인프라코어의 미래 가치를 추산하느라 밤을 꼬박 새울 인수후보들은 산업은행의 동향까지 살펴야 하는 모양새다. 거래 흥행을 위해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을 끌어들인 건지, 특혜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원에 나선 건지를 두고 PEF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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