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자연에 있다"…대편성 국악합창곡 내놓은 작곡가 이영조

입력 2020-10-21 17:00   수정 2020-10-21 17:05

"청춘만 아름다움일까요. 할머니 주름살에서도 미(美)를 찾을 수 있어요. 국악 가락에도 이런 예술성이 담겨있죠. 인생을 관조하는 데서 오는 충만한 감동을 이번 공연에서 선보입니다."

20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만난 작곡가 이영조(78)는 자신이 써낸 국악합창곡의 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50년 넘도록 국악과 양악을 엮어 곡을 숱하게 써왔다. 1987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곤 오페라 '처용'을 써내기도 했다. 80세를 앞두고 다시 오선지를 책상 위에 올린 이유는 뭐였을까. "먹고 사는 거만큼 중요한 게 '어떻게 노느냐'입니다. 찰나에 즐기다 잊혀지는 음악과 달리 여러 번 곱씹으며 인생의 정수를 고민할 음악을 내놓고 싶었습니다."

그의 음악사상을 담은 국악 합창 공연이 열린다. 이달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시조-칸타타'다. 이날 공연에서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김성진의 지휘에 맞춰 시조 칸타타를 비롯해 민요 '윤슬', '금잔디' 등을 들려준다. 소프라노 이유라와 테너 신동원, 가객 하윤주가 열창에 나선다.

시조 칸타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2010년 임준희의 '어부사시사'를 무대에 올린 후 10년만에 선보이는 대규모 국악 합창곡이다. 오랜 기간 준비한만큼 단원 80여 명과 창원시립합창단 80명이 함께 무대에 서는 대규모 공연을 마련했다. 작곡가도 국악과 서양음악을 연결시켜온 거장을 위촉했다.

위촉을 받은 후 이영조는 고민에 빠졌다. 작곡 재료인 '가사'가 마땅치 않아서다. 그는 해답을 '시조'에서 찾았다. 총 3부로 나눠진 합창곡은 1부에서 성운, 고응척 등 옛 문인들이 사계절을 그린 시조에 노랫말을 붙였다. 물결이 일렁이는 모습이나 함박눈이 쏟아지는 풍경을 국악 선율로 옮겨낸 것이다. 2부에선 황진이가 남긴 시조를 바탕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종결부에선 '훈민시조'를 3중창과 합창으로 풀어냈다. "1년 남짓 고민하면서 60번 넘게 악보를 고쳐 써낸 곡입니다.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각자 다르지만 결국엔 자연으로 돌아가죠. 생명이 보여주는 궁극의 아름다움, 이걸 국악 화음으로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2000년부터 그는 경기 용인에 있는 한적한 시골로 이사했다. 텃밭에 옥수수를 심고 방울토마토를 기르며 악상을 떠올린다고 했다. "자연은 참 신비로워요. 1950년 여덟 살 무렵 6.25 전쟁을 되돌아봐도 아비규환 대신 피난갔던 시골 풍경이 떠오르죠. '돌멩이(씨앗)에서 옥수수가 나와!'라고 놀랐던 어린 시절이요"

자연을 예찬하지만 이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언제나 골치거리였다. 국악기로 화음을 풀어내는 게 고역이라고도 했다. "음향 구조를 짜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죠. 서양음악에선 기본인 대위법이 없어서였어요. 국악 현악기가 주로 줄을 튕겨서 소리를 내다보니 속주가 쉽지 않죠. 첼로와 더블베이스를 보강하고 단원들에게 레가토를 해달라 부탁했습니다. 쳐보지 않은 주법을 익히느라 단원들이 정말 고생했죠."


음정 체계도 다르고 연주기법도 다른 국악에 이영조가 빠져든 이유는 뭐였을까. 그는 '자부심'을 이야기했다. "독일과 미국에서 유학을 할 때 해외 연주자들이 놀랐죠. 동양에서 온 연주자가 자기네 음악을 유려하게 풀어냈으니까요. 그러고 '너희 나라에서 베토벤에 버금가는 음악가는 누구냐'하곤 물었죠.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때 생각했죠. 한국 음악가라면 자국 전통음악의 예술성을 보여줘야한다고요"

치열하게 곡을 쓰지만 그가 놓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친숙함'과 '민족성'과 '현대성' 세 가지다. "듣기 어려우면 접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자연히 대중들과 멀어져요. 우리가 공감하는 정체성(민족성)을 편히 들을 수 있게 곡을 짜고(친숙함), 마지막으론 지금 시대에 맞는 공연으로 보여줘야죠"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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