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는 "LG생활건강은 시가총액이 24조원이 넘는데, 고작 주식 3억원 어치를 갖고 있다고 대주주로 분류해 세금을 때리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며 "30% 넘는 양도세를 낼 바엔 이전에 매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금 포비아(phobia·공포증)가 국내 증시를 덮치고 있다. 정부가 대주주 요건 강화 강행 의지를 드러내자 연말 매물 폭탄을 우려한 개인 투자자들의 증시 이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주식투자자들의 의욕을 꺾지 말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무색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로서는 친가·외가 조부모, 부모, 자녀, 손자·손녀 등 직계존비속과 배우자가 합친 금액이 3억원을 넘으면 대주주가 된다. 이를 피하려면 올해 12월28일 전에 팔아야 한다. 개인 투자자라도 대주주가 되면 매년 4월에 22~33%의 양도세를 내야 한다. 과세 대상 주식은 최대 42조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시장 분위기는 심각하다. 개인 투자자들은 지난달까지 45조3536억원을 순매수하며 국내 증시를 떠받쳤지만, 이달에는 9403억원을 팔아치우면서 순매도로 돌아섰다. 코스닥시장은 여전히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규모는 1조3400억원으로 전월(2조6567억원)의 절반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개인 투자자들이 대주주 요건 강화를 앞두고 물량 털어내기를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대주주 요건은 매년 12월30일 종가를 기준으로 정해지는데 주문 체결 후 주식 양도까지 이틀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늦어도 12월28일에 매도주문을 체결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들은 매년 12월께 물량을 털어내고 있지만, 올해는 물량이 많아 고점이라고 생각하는 10월부터 주식 비중을 줄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주주 요건이 강화될 때마다 개인들의 매도세는 연말에 집중됐다"며 "개인의 순매도 규모는 매년 12월 평균 3조원 정도였는데, 올해는 10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현재 주식 수 기준으로는 주가가 155만원이 넘는 LG생활건강은 200주 가량, 6만원 가량인 삼성전자는 5000주 가량을 가지고 있으면 과세 대상이 된다.
청원인은 "현행 대주주 양도세는 납세자의 부담능력을 무시하고 불평등하게 차별 과세하고 있다"며 "주식 10개 종목에 2억5000만원씩 총 25억을 보유한 A씨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지만, 주식 1개 종목에 3억원 투자한 B씨는 최대 33%의 세금을 내야 한다. 이걸 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 어느 나라도 대주주 요건을 금액으로 정하지 않는다. 대주주는 지분율로 판단해야 정확하다"며 "분산투자로 수 십억원을 벌어들이는 투자자의 소득은 놔둔 채 1개 종목 투자자에게만 소득세를 걷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주주 요건 강화를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전날 대주주 요건과 관련해 "청와대는 그동안 밝혀온 정부(기획재정부) 방침에서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이달 초 진행된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2017년 하반기에 결정한 사항"이라며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정부가 대주주 요건 3억원은 그대로 유지한 채 가족 합산 방식만 개인별 과세로 수정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홍 부총리가 오는 22일과 23일 열리는 국감에서 관련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추 의원은 "대주주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과도한 양도세 부담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며 "대주주 요건은 2018년 이후에만 두 차례 하향 조정됐다. 결국 주식 투자자들의 불만과 주식시장의 혼란만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개정안에는 가족 합산 과세를 없애는 내용도 담겼다. 추 의원은 "특수관계에 있는 자의 보유주식을 합산하는 규정은 지나치게 복잡해 결국 납세자의 과세대상 여부 확인을 어렵게 한다"며 "납세자가 관계인의 지분을 직접 파악해 신고해야 하는데, 이는 신고 의무를 이행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소득세법 '제94조'에 단서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주주 또는 출자자 1인의 소유주식이 시가총액 10억원 이상으로 2021년 4월1일 이후 주식을 양도에 한다는 경우로 대주주 요건을 한정한 것이다.
윤진우/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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