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는 “현재 직업이 프리랜서로 소득이 규칙적이지 않아 예금액과 현금, 대출금 등 자금 출처를 일일이 밝히는 게 부담스럽다”며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대상이 확대되기 전에 매매 계약을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오는 27일부터 서울에서 주택을 매입할 경우 자금조달계획서 및 증빙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의무화되면서 그 전에 매매계약을 하려는 이가 늘고 있다. 계획서 내용이 실제와 일치하는지 입증할 수 있는 증빙자료도 추가로 내야한다는 점이 매입자에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현재 주택 매매 시 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 밝히는 자금조달계획서 제출은 규제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3억 원 이상, 비규제지역 6억 원 이상 주택 거래에만 해당된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주택 가격과 관계없이 규제지역 내 모든 주택을 거래할 때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서울과 경기, 인천 대부분 지역이 규제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사실상 수도권 대부분 지역의 주택거래 자금 출처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여기에 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을 거래할 때에는 계획서 외에도 계획서 내용이 실제와 일치하는지 입증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현재는 9억 원 초과 주택만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하지만 대상이 대폭 늘어난다. 서울 전역을 비롯해 세종, 대구 수성구, 대전 유성구 등이 투기과열지구다. 자금조달계획서와 증빙자료는 부동산 실거래 신고를 할 때 한꺼번에 제출해야 한다. 거래일로부터 한 달 내 각종 서류를 모두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국토부 측은 “증빙자료 제출이 곤란할 경우 미제출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추후 관련 기관에서 추가 증빙을 요구하면 이에 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획서나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정부는 주택 매입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더욱 깐깐하게 들여다보고 불법 대출이나 편법 증여 등을 걸러내기 위한 취지로 이 같은 대책을 내놨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시장에선 정부가 과도하게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거래는 위축시키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늘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현장에선 벌써부터 세무사들에게 아파트 구입에 대한 상담이 늘고 있다. 서울에서 전용 84㎡ 아파트를 마련하려고 준비 중인 신혼부부 윤모 씨(37)는 최근 세무사를 찾았다. 기존 주택을 매도하고 새 아파트를 사는 과정에서 드는 세금과 앞으로 준비해야 할 자금조달계획서 및 증빙 서류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아서다. 윤 씨는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예금, 부모님으로부터 증여 등 각종 자금을 끌어다가 집값을 마련하려하니 준비해야할 자료가 복잡했다”며 “이젠 집 살 때 마다 세금에 복비는 물론 세무 상담 비용까지 치르게 생겼다”고 푸념했다.
각종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도 자금출처 소명과 관련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증빙서류 제출이 부담스러워 9억원 미만 소형이나 구축 급매물 위주로 매물을 보고 있었는데 이젠 모든 서울 내 모든 주택을 대상으로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고 해 고민에 빠졌다”며 “시행일 전에 계약할 수 있는 매물을 급하게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 가격이 3억원 이하인 단지에서는 거래 위축에 대한 불안감도 내비치고 있다. 아직 3억원 이하 매물이 남아있는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 일대 단지에선 “강남 집값 잡는다더니 왜 서민들이 사는 저가 주택에까지 규제를 늘리냐”는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
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3억원 미만 매물이 있는 도봉구 방학동 일대 한 중개업소 대표는 “현금이 충분하지 않은 수요자들은 여기저기서 자금을 끌어와 집값을 마련하기 때문에 자금 출처 증빙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 불안감이 크다”면서 “아무래도 규제 전보다는 매매가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에 거래가 위축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자금 출처를 자세하게 공개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투자자들도 많다. 고양시 한 아파트 단지 내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곳은 아파트 값이 3억원을 밑도는 매물도 있어 갭투자 수요가 많았는데 앞으로 자금출처 공개를 하면 그 수요가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전세 수요가 커지면서 매매 거래가 줄었는데 이 같은 추세가 더욱 심화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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