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독감백신 유통 관련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서 고개를 숙였다. 잇따른 독감백신 문제로 정부 대응에 신뢰가 떨어진 것에 대한 사죄다. 하지만 정 청장은 “백신 접종은 계속 진행하겠다”고 했다. 사망자들이 독감백신 때문에 숨졌다는 과학적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자가 28명까지 늘자 야당 의원들이 “독감백신 접종을 당장 중단하라”고 압박했지만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정 청장은 이런 가능성이 낮다고 했다. 그는 “백신 제조 과정 중 식품의약품안전처 검증 과정을 통해 독소 등 독성은 거르고 무균 실험도 한다”며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데다 백신 제품 문제였다면 바로 중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의료계에서도 백신 자체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사망자와 같은 백신을 맞은 사람 중 중증 이상 반응을 보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계란 때문에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최근에는 백신 공정 과정에서 순수분리정제가 되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거의 없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돈을 내고 맞는 유료 백신은 4가 백신을 사용했지만 독감 접종 고위험군인 고령층은 대부분 무료 백신을 맞기 때문에 3가 백신을 접종했다. 노인들이 대규모로 4가 백신을 맞은 것은 사실상 올해가 처음인 셈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같은 업체의 제품이라도 3가 백신의 전신 이상 반응 비율은 30%지만 4가 백신은 43.8%로 이보다 높았다. 대부분 두통, 근육통, 피로감 등 심하지 않은 증상이지만 이런 경미한 차이가 고령층에게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청장은 “전신에 생기는 경미한 이상반응은 제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가능성이 낮다는 취지다.
2015년 국가 독감백신을 맞은 뒤 사망해 질병관리청에 신고된 사례는 3명에 불과하지만 유료 독감백신을 맞은 뒤 식약처 의약품안전관리원에 보고된 사례는 11명에 이른다. 두 명이 중복돼 그해 사망 사례는 12명 신고됐다.
독감백신 유통 문제 등으로 중단됐던 국가백신 접종 사업이 재개되면서 70세 이상 고령층이 19일 한꺼번에 의료기관으로 몰린 것도 잇따른 사망 원인이 됐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9~20일 이틀간 의료기관을 찾아 독감백신을 맞은 62세 이상 고령층은 329만5869명에 이른다. 19일 하루에만 180만 명이 접종했다. 19일부터 70세 이상 접종이, 오는 26일부터 62~69세 접종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미 접종한 사람 중 상당수는 70세 이상 고령층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외출을 삼가던 고령층이 독감백신을 맞기 위해 쌀쌀한 날씨에 외출해 장시간 긴장한 상태로 대기한 환경이 사망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비교적 낮은 연령인 62세부터 접종을 시작했더라면 사고가 줄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70세 이상 사망자가 하루 평균 560명인데, 이 중 절반은 독감 백신을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전에는 질병으로 분류될 사망자가 독감백신 관련으로 발표되면서 숫자가 갑자기 늘어난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사망자 중 상당수가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인과관계와 상관없이 백신 접종 후 사망한 사람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취지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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