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제, 韓기업을 외국로펌 먹잇감 만들 것"

입력 2020-10-22 17:14   수정 2020-10-23 01:17


정부가 추진하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국내 기업이 외국 집단소송 전문 로펌의 사냥감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더해지면 기업을 파산에 이르게 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2일 서울 대흥동 경총회관에서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 바람직한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김용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입법예고된 두 법안 취지가 피해자의 효율적 구제라고 하지만, 실제 소송이 제기될 경우 기업은 회복할 수 없는 경영상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단소송에 기업 파산할 수도”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단소송법의 문제점’ 발제에서 “이 법안은 거액의 화해금을 노리고 소송을 남용하는 외국 집단소송 전문 로펌의 사냥터를 제공해 우리 기업과 국가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피해자 일부가 제기한 소송으로 전체 피해자가 함께 구제받는 집단소송제를 현행 증권 분야에서 전 분야로 확대하는 내용의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한 교수는 “집단소송제를 앞서 도입한 미국에선 막대한 배상액, 광범위한 소송자료 제출, 주가 및 회사 이미지 추락 등 소송 남발의 부작용이 심각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미국에서도 최근엔 집단소송이 징벌적 손해배상 및 반기업 편견을 가진 배심제와 결합해 기업을 파산에 이르게 하는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앞서 정부 입법예고안이 통과될 경우 30대 그룹 기준 소송비용이 최대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집단소송 1조7000억원, 징벌적 손해배상 8조3000억원 등이다. 현행 소송비용 추정액 1조6500억원의 여섯 배에 달하는 규모다. 한 교수는 “현행 민사소송법상 공동소송과 선정당사자제도를 개선해 효율적으로 다수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일부 주는 징벌적 손해배상 금지”
윤석찬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의 문제점’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 “미국에선 실손해액을 기준으로 일정 배수의 배상액을 부과하는 배액배상제를 적용할 때 주로 2~3배 한도로 시행하고 있다”며 “정부안의 5배 한도 징벌적 손해배상은 과다하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미국 학계에선 19세기부터 과도한 액수의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위헌성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다”며 “일부 주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아예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2008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엑슨사 선박 충돌에 따른 원유 유출 피해자에게 인정된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50억달러에서 5억750만달러로 감액한 판결을 예로 들었다.

그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의 성립 요건인 ‘고의 또는 중과실’을 ‘악의에 찬 고의’로 제한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과 억제를 목적으로 하는 제도의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부회장은 “국내 기업은 지금도 과중한 형사처벌과 행정제재, 민사소송에 시달리고 있다”며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더해지면 소송 대응 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이 존폐 위기까지 내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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