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금리’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해 자금 조달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급락했던 증시가 가파르게 회복되는 과정에서 가치가 뛴 자사주를 유동성 확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EB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자가 발행회사가 가진 특정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이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카카오 KB금융 바이넥스 에코프로 등 17개 상장사가 EB 발행 계획을 공시했다. 이들 중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조건(표면금리 기준)으로 EB를 발행한 곳이 13곳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EB 발행 기업 수는 10곳이었으며, 이 중 제로 금리로 EB를 발행한 기업은 6곳이었다.
이들 기업은 주가가 크게 뛰자 보유 중인 자사주를 활용해 EB 발행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21일 3억달러(약 3400억원) 규모 외화 EB를 제로 금리로 발행한다고 발표한 카카오가 대표적이다. 카카오는 보유 중인 자사주 71만1552주가 교환대상인 해당 EB를 오는 28일 해외 투자자들을 상대로 발행할 예정이다. 투자자들은 내년 1월1일부터 주당 47만7225원에 해당 EB를 카카오 주식으로 바꿀 수 있다. 기준 주가(21일 종가 35만3500원) 대비 35% 높은 수준이다.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카카오의 주가 상승세가 내년 이후로도 지속될 것으로 판단하고 EB 투자에 뛰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카카오 주가는 증시가 최저점을 찍은 3월19일 이후 163.8% 상승했다.
카카오에 앞서 EB를 발행한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바이넥스(228.9%) 모트렉스(187.8%) 베셀(150.8%) 피에스케이(126.4%) 아모텍(97.7%) 등 이 기간 주가가 급등한 곳들이 줄줄이 자사주를 교환대상 삼아 EB를 찍었다. 국내 대형 금융지주인 KB금융도 양호한 주가 흐름을 바탕으로 지난 6월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인 칼라일을 2400억원 규모 EB 투자자로 유치하며 화제가 됐다.
기업가치가 급등한 자회사 덕분에 EB로 두둑한 현금을 손에 쥔 기업도 있다. 에코프로는 2차전지 랠리로 높게 뛴 자회사 에코프로비엠 주식을 교환대상 삼아 지난 6월 800억원어치 EB를 발행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앞으로도 여러 기업이 가치가 뛴 자사주를 활용해 EB 발행에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EB는 발행기업이 기존에 보유 중인 주식을 교환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신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보다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에 대한 우려가 작은 편이다.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가격도 시세보다 높게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발행기업의 주식이 한꺼번에 유통시장에 쏟아지는 일도 드물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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