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이상주)는 70대 A씨가 질병관리청장을 상대로 “예방접종 피해보상 신청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14년 10월 경기 용인시의 한 보건소에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 그러나 11일 뒤 오른쪽 다리와 허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A씨는 인근 종합병원에서 길랭바레증후군을 진단받았다. 운동신경 등을 마비시키는 신경병으로 바이러스 감염이나 예방접종 후 갑작스럽게 발병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A씨가 질병관리청에 낸 예방접종 피해보상 신청은 2017년 7월 기각됐다. 예방접종 때문에 길랭바레증후군이 발병했다는 점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해 12월 이의신청마저 기각되자 A씨는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은 이의신청 기각 처분 후 90일 이상 지나서야 소송을 냈다는 이유로 각하 판결했다. 재판부는 “예방접종으로 길랭바레증후군이 나타났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A씨는 소송 기간이 문제가 됐던 점을 고려해 청구 내용을 변경해 항소심을 다시 진행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받은 예방접종과 길랭바레증후군 사이에 시간적 밀접성이 있고, 예방접종으로부터 길랭바레증후군이 발생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며 원고 손을 들어줬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르면 국가는 예방접종을 맞은 사람이 △질병에 걸리거나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했을 때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 예방접종은 국가 보건정책에 의해 대량 접종이 이뤄지는 만큼 국가의 ‘무과실 책임(고의나 과실 없이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동찬 더프렌즈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국민 개인이 이를 입증하기는 매우 어려운 만큼 구체적인 입증이 없더라도 국가가 그 피해를 보상해주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최근 독감 예방접종 후 사망한 사람의 유족들은 질병관리청에 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며 “신청을 거부당하면 행정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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