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사 큰 획 그은 거인 쓰러지다 [이건희 회장 별세]

입력 2020-10-25 10:05   수정 2020-10-25 13:09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한국 경제사에 큰 획을 그은 거인이 쓰러졌다. 삼성은 이날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발표했다.

고(故) 이 회장은 산업은 물론 세상의 미래를 꿰뚫어보는 혜안을 갖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탐구하는 ‘고독한 천재’이자 ‘탁월한 경영자’였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삼성은 20세기말 전자업계 최고 기업이었던 소니를 무너뜨렸다. 21세기 초 최고 기업으로 평가받는 애플과 맞짱을 뜨는 유일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의 경영 능력이 없었다면 이뤄내지 못했을 성과다. 날카로운 직관력을 갖춘 ‘사상가’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수 많은 말들은 시대의 화두를 던져 사회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삼성의 질주…위기와 변신
‘17조4000억원→314조원.’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에서 2019년까지 삼성 그룹의 매출 변화다. 32년간 20배 넘게 성장했다. 1987년 세계 무대에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삼성은 누구나 동경하는 일류 기업이 됐다. 이 기간 스마트폰, TV, 모니터, D램, 낸드플래시 등 수 많은 세계 1등 품목을 만들어냈다. 10만명 남짓하던 임직원 수는 40만명을 넘었다. 이 회장의 삼성 경영 26년은 끊임없는 위기의식 속에서의 변신이었다. 어느정도 성장해도 결코 만족하지 않고 ‘초일류’를 향해 내달렸다.

이 회장은 1987년 호암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등진 뒤 회장으로 추대됐다. 재계에선 당시 45세에 불과한 이 회장이 창업주인 선친 이병철 명예회장의 그늘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세기말적 변화가 온다.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제2의 창업’을 선포했다. 1983년 자신의 사재를 털어 시작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1993년 세계 1위(D램 부문)에 올려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세간에서는 삼성의 성공을 주목했지만 이 회장은 당시를 오히려 절체절명의 위기로 삼았다. ‘많이 팔아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은 한 세계 1위 달성은 의미가 없다고 봤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신경영’ 선포다. 이 회장은 세계 곳곳에서 350여시간 동안 ‘절규’에 가까운 연설을 했다. “양이 아닌 질(質) 경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임직원에게 전파했다. 7·4제(7시 출근 4시 퇴근), 라인스톱제(불량이 발생하면 전 라인을 멈추고 원인을 파악함) 등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해 삼성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

1997년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들어갔다. 국가가 위기에 빠졌지만 삼성은 선제적으로 위기 요인을 제거했다. ‘파격적이고 성역없는 구조조정’을 내세워 59개 계열사를 40개로 줄이는 등 조직 재정비를 단행했다. 그 결과 삼성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의 경영 혜안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2003년 이후엔 시대 변화에 맞춰 융합, 디지털, 소프트 등의 개념을 경영에 적극 도입했다. 2005년 ‘밀라노 선언’을 통해 ‘디자인 삼성’의 기치를 들었다. 이후 브랜드 가치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이는 삼성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오르는데 밑거름이 됐다. 2008년 ‘삼성 특검’으로 경영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던 이 회장은 2011년 4월 출근했다. 애플이 삼성전자가 아이폰을 베꼈다며 특허소송을 제기한 직후다. ‘출근 경영’을 시작한 이 회장은 다시 한번 삼성에 ‘위기론’을 불어넣어 갤럭시S 시리즈 등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갤럭시S 시리즈로 삼성은 2012년 애플을 넘어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 기업으로 도약했다.
인재 경영…인생 대부분 ‘인간 공부’
이건희 경영은 ‘인재 경영’으로 요약된다. 이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사장들에게 ‘5~10년 뒤 뭘 먹고살 것인지’ 보고서를 내도록 했다. 보고서를 읽은 이 회장은 “원하는 답을 쓴 사장은 아무도 없다. 1년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서 5~10년 뒤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해답은 이런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인재를 구하고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사장들에게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화다.

친구 홍사덕 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이 회장은 고교 때부터 “나는 사람에 대한 공부를 가장 많이 한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인간에 대한 통찰력은 인재 경영의 바탕이 됐다. 이 회장은 임직원들을 뽑을 때 직접 면접을 6~7시간씩 했다. S급 인재를 뽑아오라며 사장들을 다그치기도 했다. 1993년 임원들을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불러 신경영 강연을 할 땐 “인간미를 찾자, 뒷다리 잡지 말자”고 말을 시작했다. ‘임직원이 서로 믿고 힘을 합쳐 한 방향으로 가면 초일류 기업이 될 것’이란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어떻게 비용을 아끼고, 어떤 제품을 개발할지가 아니었다. 삼성이 이 회장의 강의를 요약해 교육용으로 만든 ‘신경영’ 책자는 236페이지 중 처음 96페이지가 인간미, 도덕성, 에티켓에 관한 내용이다. 이 같은 인간 중심의 접근법은 삼성이 흔들림 없이 성장하는데 저력으로 작용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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