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공연 한류’를 일으킨 ‘난타’의 제작자, 수준 높은 무대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의 총감독. 오랜 시간 공연 제작자로서 국내외에서 명성을 쌓아온 배우 송승환(63)이 9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자신처럼 공연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진 캐릭터로 무대에 오른다. 11월 18일~내년 1월 3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열리는 ‘더 드레서’에서 전쟁 중에도 공연을 올리는 극단 대표 겸 노배우인 ‘선생님’ 역을 맡았다. 그는 지난 22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무대에 오르면 방송, 영화와 달리 편집 없이 나의 캐릭터를 온전히 연기할 수 있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했다.
송승환은 1965년 KBS 아역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공연, 방송, 영화 등 100여 편에 출연했다. 배우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작업도 했다. 피엠씨프로덕션 대표를 맡아 50여 편의 공연을 올리고, 제작자로서 국내 공연계 발전을 이끌었다. “어릴 때부터 여러 일을 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그런 경험이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더 드레서’ 대본은 송승환이 직접 골랐다. 영화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작가 로널드 하우드의 작품이 원작이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 ‘그날들’ 등을 올린 장유정이 각색·연출을 맡았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을 이끄는 ‘선생님’과 그의 의상 담당자 ‘노먼’이 ‘리어왕’ 공연을 올리려 하며 시작된다. 노먼 역은 안재욱과 오만석이 맡았다. “대부분 작품에선 인물의 한두 가지 면을 극대화하죠. 반면 이 작품은 각 개인의 장단점을 전부 내보이며 다양성을 표출합니다. 노먼의 반전 등도 그려져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같은 배우로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고 했다. “대사 중에 ‘배우는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거야’라는 말이 와닿았어요. 영화나 드라마는 그나마 영상 기록이 남지만, 연극은 현장 예술이다 보니 본 사람의 기억에만 남잖아요. 저도 좋은 연기를 한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작품 속 이야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힘든 현재의 상황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지금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연극 안에 살아서 존재하는 것입니다”라는 대사는 배우이자 제작자로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요즘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공연을 하는 이유는 관객들이 힘든 일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도록 돕고 위안을 주기 위한 것이죠.”
오랜 시간 ‘멀티 플레이어’로 활동해 온 그는 앞으로 배우 활동에 더욱 주력할 생각이다. ‘더 드레서’에 이어 다음 연극 작품도 준비하고 있다. “예전엔 하루를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눠 3일처럼 쓰면서 다양한 일을 해냈어요. 그런데 이젠 체력 문제도 있고 해서 일을 좀 줄이고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재밌고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배우로서 좀 더 활동하고 싶어요.”
배우로서 배우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고령의 배우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공연과 방송 뒷이야기 등을 들었다. 이를 다음달 초부터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를 통해 공개한다. “오현경 김영옥 이순재 선생님을 이미 인터뷰했어요. 개인 사생활이 아니라 그분들의 연기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겁니다. 연극·방송사에 의미 있는 영상 회고록을 담은 아카이브로 만들고 싶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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