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은 학창시절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탁구, 테니스, 골프는 물론 스키에서도 수준급 실력을 자랑했다. 서울사대부고에선 2년간 레슬링 선수로 전국대회에도 출전했다. 고교 동기인 고(故) 홍사덕 전 국회 부의장은 “레슬링을 한 이 회장과 유도를 한 나는 서로 힘자랑을 하며 겨루기도 했다”며 “이 회장의 힘에 밀려 엉덩방아를 찧은 적도 많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이 회장이 애착을 보인 종목은 골프, 야구, 럭비 등이다. 이 회장은 “심판이 없는 골프에서는 룰과 에티켓과 자율을, 기업 경영과 비슷한 야구에서는 스타 플레이어와 캐처 정신을 배울 수 있다”고 자주 말했다.
그의 스포츠 사랑은 기업가가 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삼성스포츠단을 만들어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을 지원했다. 탁구, 테니스, 럭비, 배드민턴, 태권도, 육상 등 비인기 종목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은 스포츠단 운영에 연간 8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들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스포츠 행정가로도 큰 역할을 했다. 레슬링협회장(1982~1997년)을 거쳐 대한체육회 이사로 재직했다.
이 회장이 국내 스포츠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다. 1996년 7월 애틀랜타올림픽 기간 중 열린 105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IOC 위원에 선출돼 20년 이상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2011년 7월 7일 남아공 더반 IOC 총회에서 평창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 그 순간, 이 회장은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공개된 장소에서 눈물을 보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 회장은 와병 중이던 2017년 8월 11일 IOC 위원 자리를 내놓았다. IOC는 2017년 9월 16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131차 IOC 총회에서 국제 스포츠계에 기여한 공로로 이 회장을 IOC 명예위원으로 추대했다.
정부도 그가 스포츠계에 남긴 업적을 평가했다. 이 회장은 1984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1986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 1991년 IOC 올림픽훈장을 받았다.
김순신/조희찬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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