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서울시가 ‘공공재개발’을 추진하면서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근린생활시설에 대해서도 입주권을 주기로 해 논란이 일 전망이다. ‘근생 쪼개기’를 방지하겠다며 10년 동안 조례를 통해 막아왔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도심 주택공급에 대한 다급함이 악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달까지 진행한 공공재개발 설명회에서 상가 등 비주거시설 소유자들에게도 새 아파트 분양자격을 주겠다고 안내했다. 공부상 근린생활시설이더라도 사실상 주거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입주권을 주겠다는 의미다.
당시 설명회에 참여한 뒤 사전의향서를 제출한 강북의 한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서울시가 조례를 개정하거나 공공재개발로 주택공급활성화지구를 지정할 때 반영해주겠다고 했다”며 “사업에 반대하는 상가 소유주들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는 상가 등 근생 건물 소유자들에게 재개발 입주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용산 서계동과 청파동, 한강로 등을 중심으로 근생 쪼개기가 만연했던 영향이다. 근생 쪼개기란 재개발구역의 근생시설을 둘 이상으로 쪼개서 분양대상자를 늘리는 수법이다. ‘지분 쪼개기’나 ‘신축 쪼개기’의 한 맥락이다. 근생 쪼개기의 경우엔 주거용 건물과 달리 주차장 관련 규제를 받지 않아 유행했다.
서울시는 2008년 7월 30일 조례 개정을 통해 이 같은 사실상 주거용 근생시설에 대해 제한적으로만 입주권을 허용했다. 그러다 2011년 5월 26일부턴 아예 막았다. 이날 이후 정비구역지정 공람이 이뤄진 구역에선 사실상 주거용 근생시설 소유자들에게 새 아파트 입주권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재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시 근생시설에 대해 입주권을 주기로 하자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사업을 추진하는 지역에선 일단 환영이다.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가 공공재개발을 추진하기로 한 옛 한남1구역 주민 김모 씨는 “사업 동력이 생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공실 문제를 겪었던 상가 소유주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과거엔 서울시에서 근생의 입주권 자격을 막는 바람에 무더기 경매가 쏟아지기도 했다”며 “이제 와 허용한다면 제도의 일관성을 해치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조합을 설립한 정비구역에서 공공재개발을 추진하려면 토지등소유자 50%의 동의를 얻으면 된다. 아직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경우 주민 66.7%의 동의가 필요하다. 조합설립에 필요한 토지등소유자 등의율이 75%인 점을 감안하면 사업 소요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근리시설 등 상가 소유주들의 입주권 자격이 인정된다면 동의율은 단기간에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 다만 조합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사업성이 떨어질 수 있다.
발빠른 투자자들은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 부동산 투자자는 “청파동에 매물로 나온 근생 건물을 보지도 않고 계약했다”며 “입주권이 나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물건조차 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울 도심 주택공급을 확대하려는 정부와 서울시의 다급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느닷없이 기준을 바꿔 입주권 자격을 인정하겠다는 건 그만큼 사업을 촉진시켜 공급량을 늘리겠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정비사업을 억제한 데서 비롯된 촌극”이라고 꼬집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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