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택배기사 처우개선 입법 움직임이 걱정스러운 이유

입력 2020-10-28 17:54   수정 2020-10-29 07:47

‘연봉 1억원 택배기사’는 올초 가장 뜨거운 뉴스 중 하나였다. 유명 대학 졸업장이나 특별한 자격증이 없어도 ‘꿈의 연봉’을 받는다는 이야기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 돈을 벌기까지 얼마나 ‘과중한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지, 개인별 영업력에 따라 손에 쥐는 돈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등은 관심 순위에서 뒤로 밀렸다.

당연히 관심받았어야 할 그 이슈가 최근 택배기사들의 과로 추정사(死)가 이어지면서 뜨거운 감자로 재조명받고 있다. 최근 들어 10여 명의 택배기사가 잇달아 사망했고, 그 원인이 과로일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대통령까지 나서 ‘시정 조치’를 지시했다. 불과 보름 사이에 국무총리, 장관, 여야 국회의원들이 CJ대한통운 등 물류회사를 현장 점검하겠다며 앞다퉈 찾기도 했다.

세간의 관심은 이제 택배기사들의 수입보다는 삶의 질에 집중되고 있다. 강제에 가까운 과로에 시달린다거나, 주말도 반납한 채 밤낮없이 일하는 고단한 일상만이 부각되고 있다. 온라인 쇼핑이 급증한 덕에 연봉 1억원을 버는 택배기사가 더 많아졌지만 이런 얘기는 쏙 들어갔다.

택배기사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그 원인은 택배산업의 독특한 태생 배경에 있다고 본다.

택배업이 직업으로서 뜬 시기는 2000년 초부터다. ‘닷컴 열풍’이 불면서 G마켓 등 온라인 쇼핑이 새로운 소비 채널로 떠올랐다. 외환위기로 직장을 잃은 수많은 실업자가 택배에서 새 삶의 기회를 찾았다. 박스당 수수료를 받는 구조여서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만일 당시 정부가 택배회사에 배송기사 직고용을 강제했더라면 수백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일자리를 못 찾고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택배기사가 ‘반 사장, 반 근로자’ 성격의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 배경이다.

20여 년 전 얘기로까지 돌아간 건 최근의 ‘택배 과로사’ 논쟁이 주 5일 근무 의무화, 새벽 혹은 익일 배송 금지 등 규제의 영역으로 번지고 있어서다. 여러 국회의원이 앞다퉈 법안을 준비 중이라는 후문이다. 입법안들은 분류 작업자를 별도 고용하는 식으로는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시장에서는 걱정이 많다. 한 택배회사 관계자는 “박스당 수수료 구조를 없애고, 정해진 시간만큼만 일하도록 하는 게 가장 근원적인 해결책”이라면서도 “문제는 지금과 같은 특수(1~8월 택배 물량 전년 대비 20% 증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인건비를 올리는 규제를 만들어놨다가 시황이 악화되면 택배업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다. 입법안 추진에 대해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우려 때문에 택배회사를 쓰지 않고 직배송 체제로 가는 업체도 있다. 쿠팡은 직접 쿠팡맨을 채용해 문 앞까지 주문 상품을 배달해주고 있다. 마켓컬리도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위해 근로자를 직고용하고 있다. 홈플러스, 롯데마트 같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도 기존 점포를 물류시설로 바꾸고 직원들을 배송 관련 직군으로 전환 배치(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다. 택배업을 규제 울타리로 묶어 달라고 주장하는 택배연대노조와 이에 동조하고 입법을 서두르고 있는 정치인들은 이 같은 산업 변화의 흐름을 읽고 있기나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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