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원 미만 주택 보유자만 국민이고 집값이 그보다 높은 사람은 국민이 아닙니까. 정부의 편가르기 정치에 신물이 납니다.”
서울 마포에 사는 정모씨(66)는 최근 잇따르는 보유세 인상 정책에 울분을 토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포래미안푸르지오 30평형대 아파트에 5년 전부터 살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8억원을 밑돌던 이 아파트는 최근 17억원 정도로 가격이 뛰었다. 그는 “가만 있는데 집값만 올라 세금만 무진장 늘었다”며 “조금 더 비싼 집에 사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는 건 맞지만 죄인 취급하며 벌 주듯 세금을 때리는 게 정의로운 거냐”고 했다.
정부의 편가르기 정책이 도를 넘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을 부자와 아닌 사람으로 나누고 부자에겐 징벌적 과세를, 그 이하 계층에는 혜택을 몰아주는 식의 정책이다. 특히 주택은 9억원이 기준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책이 ‘세원은 넓게, 세율은 낮게’라는 조세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고 각종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고가 주택 보유자만 급격히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공동주택 기준 시세 15억원 이상은 올해 반영률이 75.3%인데 내년 78.3%, 2025년엔 90%까지 인상키로 했다. 반면 지금도 68.1%로 낮은 9억원 미만 주택은 내년 68.7%, 2025년 75.7% 등으로 천천히 올린다.
공시가격 인상은 보유세 증가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세율 인상 정책과 다를 바 없다. 고가 주택만 공시가를 확 올린다는 건 부자 증세를 한층 강화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 부담이 급격히 뛸 9억원 이상 주택 보유자는 혜택에서 배제된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3000만원에 이르러 ‘9억원=고가 주택’이란 공식이 유효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정부는 9억원 기준 편가르기를 고집하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내년 대선 등 선거를 노리고 표가 될 만한 부자 때리기를 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꼬집었다.
편가르기식 부자 증세 사례는 이뿐이 아니다. 정부는 공시가격 9억원 이상 주택 보유자가 내는 종합부동산세의 다주택자 세율을 작년 2.0%에서 3.2%로 인상한 데 이어 내년엔 6.0%까지 올리기로 했다. 1주택자 적용 종부세율도 같은 기간 2.0%→2.7%→3.0%로 오른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란 세제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며 “지금도 소득세, 보유세, 상속세 부담을 못 이기고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로 떠나는 기업과 자산가가 많은데 이런 추세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당정은 이날 재산세를 낮추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적용 주택 대상을 놓고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29일로 예정됐던 재산세 완화 방안 발표도 연기됐다.
서민준/구은서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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