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인신공격이 주를 이루는 현 인사청문회 제도의 문제점에 강한 공감을 표하며 차기 정부를 위해서라도 제도개선을 국회에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29일 언론브리핑에서 "어제 국회 시전연설 환담에서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가 본인을 검증하는 과정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인사청문회 언급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선거와 관련한 얘기가 오가는 과정에서 나왔다. 김영춘 국회사무총장이 "승패와 상관없이 문 대통령이 후보 연좌제를 깼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부부는 각각 독립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을 하는 인격체이다. 인사를 할때 남편 또는 부인이 누구인지는 고려하지 않는다"면서 현 청문회제도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유 본부장 임명 당시 남편은 국민의힘 현역이던 정태옥 전 의원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2017년에는 야당이던 국민의당 문병호 전 의원의 부인인 민유승 판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현행 인사청문회가 "좋은 인재를 모시기 어렵다"고 솔직한 속내도 밝혔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은 공개로 하는 걸로 바꾸려한다"고 설명하자 "그 부분은 반드시 개선됐으면 좋겠다. 우리 정부는 종전대로 하더라도 다음 정부는 지금의 인사청문회 풍토에서 벗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본인이 하고 싶어도 인사검증에 대한 부담으로 가족이 반대해서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이날 발언은 다음 정부에서라도 반드시 길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부 후보자에 대해서는 며느리의 호적까지 자료를 요구하는 등 여야를 떠나 인사청문회가 지나치게 '신상털기'로 치우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현재 국회에는 홍영표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인사청문회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인사청문회 종료기한을 현재의 15일에서 20일로 늘리되 공직윤리청문회와 공직역량청문회로 각각 분리해 개인과 정책역량 검증을 분리하는 방안이다. 단 윤리청문회는 비공개로 진행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문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개선을 거론한것 관련, 일각에서는 개각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개각이 있다 없다를 포함한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미리 언급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
청와대는 전날 WTO사무총장 선호도조사에서 나이지리아 후보가 유 본부장을 앞선 결과와 관련, "대통령과 청와대는 총력을 다해 지원했다"면서 "나머지 입장과 판세 등은 산업부 외교부 등 주무부서에서 설명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다만 일부 외국 언론에서 보도한 선호도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선거 절차상 선호도 조사결과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 나이지리아 후보가 앞선다는 투표수는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WTO는 개인별 득표수는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일부 언론은 나이지리아 후보가 유 후보를 40여표 차이로 앞섰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사전선호도 조사결과와 관계없이 유 후보자의 WTO사무총장 진출에 아직 기대를 접지않는 모습이다. 주요 국가의 '비토'가 없어야 하는 사무총장 선거의 특성을 고려할 때 유 후보자 공개 지지입장을 밝힌 미국이 나이지리아 후보에 대한 공개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어서다. 미국의 반대할 경우 선호도조사에서 앞섰다고 하더라도 사무총장 당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선호도 조사가 곧 결론은 아니다"며 "특별이사회 등의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어떻게 대응할지는 부처가 고민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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