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은 이 책에서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변화를 심층 진단하고, 그에 바탕해 이념의 시대가 퇴조할 것임을 예견했다. 한국전쟁으로 문을 연 1950년대는 이념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좌파(트로츠키주의)에서 전향한 벨은 급진사상이 설 자리를 잃고 있으며, 조만간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술(테크놀로지) 발달과 경제·정치체제의 진화 덕분에 빈곤에서 벗어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 의지가 급속도로 고갈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벨이 말한 종언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시즘 파시즘 등의 급진적 이념이다. 당시 세력을 급속 확장 중이던 신좌파의 여러 이념도 얼마 못가 정당성과 호소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벨은 “최소한 서양의 역사는 마르크스의 예언을 뒤집었다”며 급진 사상의 종말을 예고했다. 노동자들이 계급투쟁의 전사(戰士)가 아니라 대중사회의 주역으로 변모했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여러 변혁이론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노동계급 절대 궁핍화의 법칙’은 눈부신 기술 진보를 들어 반박했다. 기술을 습득한 노동자들이 사회에 저항하는 혁명적 방식 대신 사회규범 속에서 일정 지위를 인정받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사회 변동의 동력이었던 불만 가득한 노동자들이 이제 지식인 이상으로 사회에 만족하고 있다. 선진 산업사회로 갈수록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대립은 첨예화되기보다 극복된다.”
벨 주장의 핵심은 이념에 기초한 혁명적 에너지의 소진이다. 그는 다원주의 정치의 부상, 복지국가 대두, 과학기술 발전 등으로 인해 ‘체제 변혁’이 노동계급의 관심사에서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양극화가 아니라 계층의 다양한 분화가 나타난다고 본 것이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의 결여’라는 급진적 이론들의 치명적 약점도 강조했다. 벨은 “사회사상사에서 가장 놀라운 일의 하나는 사회주의 리더들이 미래 사회의 윤곽이나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중이 자신들의 새로운 사상을 지지하도록 설득에 나선 것”이라며 비전의 부재를 꼬집었다. “특히 경제부문에서의 사회주의는 어떤 방식이고,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다”며 “생산 조직화, 자원 분배, 임금 지급 형태, 새로운 생산물 창조 등이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벨이 겨냥한 대상은 당시 서구 사회를 장악해가던 신좌파의 네오마르크스주의다. 네오마르크스주의는 ‘스탈린식 강압 통치’를 비판하며 탄생한 새로운 경향을 말한다. 이탈리아의 그람시, 헝가리의 루카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등으로 대표된다. 학생, 실업자, 소수민족 같은 차별받는 이들을 변혁운동의 주체로 상정해 유럽 68혁명, 일본 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좌파 포스트모더니즘과 ‘정치적 선’을 앞세운 정치의 범람도 이 같은 흐름의 연속선상에 자리하고 있다.
벨은 “신좌파는 정열과 에너지는 갖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을 만큼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이상을 강조하지만 지향하는 미래를 정의조차 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신좌익은 사회주의가 무엇이고, 관료화를 어떻게 막아낼 것이며, 노동자에 의한 통제는 어떤 의미인지 등의 핵심 문제에 대해 언제나 미사여구만 늘어놓을 뿐이다.”
벨이 말한 ‘유토피아에 대한 사람들의 식지 않는 꿈’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사회주의 바람이 여전한 배경을 짐작하게 해준다. 하지만 벨은 유토피아를 앞세운 이데올로기의 지속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끄러운 수단을 합리화하는 구태를 또다시 반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나간 논쟁들을 보잘 것없는 것으로 흘려버린 채 언론의 자유, 반대의 자유, 연구의 자유라는 고귀한 교훈을 잊는다면 예고된 실패의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백광엽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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