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엔 긴 줄, 거리엔 '노마스크'…핼러윈의 밤은 뜨거웠다

입력 2020-11-01 11:18   수정 2020-11-01 11:32



지난달 31일 오후 11시 서울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는 온통 사람들로 뒤덮였다. 500m 거리 위에 빼곡히 채워진 인파로 길을 오가기 힘들 정도였다. 사람들은 서로 가슴과 등을 붙인 채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월드컵 때 광화문에서 거리 응원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사진 찍어도 될까요?” 지나가던 한 여성이 영화 ‘조커’ 주인공 분장을 한 남성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남성은 여성과 어깨동무를 하고 머리를 맞댄 채 포즈를 취했다. 여성 얼굴에 마스크는 없었다. 이 여성은 “일년에 한번 뿐인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왔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제 잠잠해지지 않았느냐”고 했다.

핼러윈데이인 이날 밤 이태원 강남 홍대 등 서울의 주요 유흥가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거리는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에 점령됐고, 유명 술집 앞은 수십미터 대기줄이 이어졌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울 내 클럽 22곳이 문을 닫자 ‘풍선효과’로 헌팅술집과 감성주점에 인파가 모였다. “핼러윈 기간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정부 공언에도 잠잠했던 집단 감염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NO’ 마스크, 실종된 거리두기
이날 밤 이태원 최대 상권인 해밀턴호텔 뒤편 세계음식문화거리는 골목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가 지난달 30일 마련한 ‘방역 게이트’는 무용지물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소독약이 분사되는 방역 게이트가 없는 입구로 발길을 향했다.



이태원 내 주요 클럽이 문을 닫자 사람들은 거리 위에서 핼러윈데이를 즐겼다. 스파이더맨 조커 데드폴 등 영화 주인공 분장을 한 사람들과 사진을 찍거나 “해피 핼러윈”을 외치며 모르는 사람과 포옹을 했다. 대부분 마스크를 아예 벗거나 ‘턱스크(마스크를 턱에 걸치는 것)’를 했다. 대학생 윤모씨(20)는 “스무살 첫 핼러윈데이를 집에서 보낼 수 없어 즐기러 왔다”며 “오히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지하철이 코로나19 감염에 더 위험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골목 한쪽에서는 열댓명이 페이스페인팅을 받고 있었다. 이마와 볼, 입 주변에 핼러윈 분장을 그려 넣었다. 이때도 마스크를 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분장을 해주던 한 노점상은 “페이스페인팅 할 때만 살짝 마스크를 벗어서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골목 사이사이 들어선 술집도 대부분 만석이었다. 편의점 앞도 두세명씩 짝을 이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태원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강모씨는 “지난해 핼러윈 때보다는 손님 수가 절반 수준이지만 지난 5월 이태원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풍선효과’로 감성주점 북적
강남역 일대와 홍대클럽거리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강남역의 한 헌팅술집은 입구에서 50여명이 입장을 기다렸다. 거리두기는 지켜지지 않은 채 가게 입구로 이어진 좁은 계단에 한 줄로 모여 있었다. 경찰관 복장을 한 직원이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른다”고 하자 대기하던 여성 세 명은 발길을 돌렸다.



인근의 한 감성주점 앞은 대기줄이 건물 옆을 끼고 50m가량 길게 늘어섰다. 직원은 “대기가 몇 팀인지 파악이 안된다. 일단 줄을 서고 입장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윤모씨(23) “작년 핼러윈 땐 이태원을 갔는데 올해는 클럽이 문을 닫는다고 해서 강남역을 왔다”며 “핼러윈데이라 사람이 많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했다.

홍대클럽거리도 대기 줄이 인도를 가득 메워 길을 오가기 힘들었다. 인근 감자탕집 직원은 “사람이 모여 상권이 살아난 것은 좋지만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경기·대전으로 ‘원정 유흥’도
정부는 이날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전국 유흥시설을 점검했다. 서울 클럽 22곳과 감성주점 46곳은 자진휴업에 나섰다.

이런 조치를 비웃듯 이날 유흥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영업 중인 유흥업소 목록이 실시간 공유됐다. “오늘 영업하는 곳 있나요?”라는 게시글이 속속 올라왔다. 밑에는 “상봉 OO, 수유 OO, 성남 OO 열었어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경기 대전 등으로 ‘원정 유흥’을 떠난다는 글도 올라왔다. 자신을 수원에 있는 한 나이트클럽 웨이터라고 소개한 네티즌은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지난달 30일부터 제한적으로 영업을 했지만 고객이 밀려와 정상 영업한다”고 적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장소가 어디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인 것 자체가 문제”라며 “밀폐된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모이면 감염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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