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살 수 있는 제조사인지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대형 제조업체 관계자)
화장품업계가 화장품 포장에 제조사 이름을 넣는 문제를 놓고 둘로 갈렸다. 화장품 겉포장에 ‘제조원’을 의무적으로 표기해야 하는 현행 화장품법을 ‘자율 표기’로 바꾸는 개정안이 발의된 데 따른 것이다. 화장품 브랜드는 개정 찬성, 일부 제조사는 반대 입장이다.
그동안 화장품업계는 제조원 표기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제조사 의무 표기제를 바꾸자고 주장해왔다. 한 화장품 브랜드업계 관계자는 “제품에 대한 책임을 브랜드사가 맡도록 법에서 규정했는데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제조사를 굳이 표기해 경쟁사들에 (누가 실제 만들었는지) 정보만 제공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제조원 정보 노출로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에서 히트친 ‘베리썸 웁스 마이 립 틴트팩’이 대표 사례다. 코스메랩이 판매하는 이 제품은 국내 중소 제조사가 생산했는데, 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자 중국 화장품업체 모리채가 해당 제조사에 연락해 비슷한 제품을 만들었다. ‘립 타투틴트’라는 이름으로 겉포장까지 비슷하게 해 중국에서 팔자 중국 유통업체들은 자국 제품으로 매장 구성을 바꿔버렸다.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는 “선진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선 제조원을 ‘영업기밀’로 간주해 표기하지 않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열심히 수년간 연구개발해서 어렵게 해외에 진출해도 경쟁사가 너무 쉽게 제조원에 연락해 제품을 베끼는 것이 현행 제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대형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들은 “제조원을 표기하지 않으면 작은 제조사들은 점점 어려워지다가 결국 망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콜마나 코스맥스처럼 이미 지명도를 갖고 매출 1조원이 넘는 회사는 문제가 없겠지만, 제조원 표기로 인해 ‘광고 효과’를 보는 작은 제조사는 의무표기제가 없어질 경우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양측 공방은 날로 첨예해지고 있다. 290여 개 회원사가 가입돼 있는 대한화장품협회를 포함해 경기, 부산, 인천, 제주 등 7개 지역별 화장품 단체들은 자율표기제로 바꿔 달라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법 개정 찬성 의견을 전달했다. 제조사들도 협회 움직임에 대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첨예한 공방으로 이 법안은 해당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아직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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