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원 표기' 놓고 갈라선 화장품업계 "제조원 공개 불가" vs "소비자 알권리 침해"

입력 2020-11-01 16:44   수정 2020-11-02 00:40

“제조사 표기 자율 결정은 대한화장품협회에서 결정난 사항이다.”(박진영 코스메랩 대표)

“믿고 살 수 있는 제조사인지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대형 제조업체 관계자)

화장품업계가 화장품 포장에 제조사 이름을 넣는 문제를 놓고 둘로 갈렸다. 화장품 겉포장에 ‘제조원’을 의무적으로 표기해야 하는 현행 화장품법을 ‘자율 표기’로 바꾸는 개정안이 발의된 데 따른 것이다. 화장품 브랜드는 개정 찬성, 일부 제조사는 반대 입장이다.

“잘나가는 한국 화장품 쉽게 베껴”
화장품 제조원 자율표기 법안(정식 명칭은 화장품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 9월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름으로 대표 발의돼 있다. 지난해 같은 당 소속 김상희 의원(현 국회부의장)도 동일한 내용의 법안을 냈다가 회기가 끝나 자동 폐기됐다.

그동안 화장품업계는 제조원 표기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제조사 의무 표기제를 바꾸자고 주장해왔다. 한 화장품 브랜드업계 관계자는 “제품에 대한 책임을 브랜드사가 맡도록 법에서 규정했는데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제조사를 굳이 표기해 경쟁사들에 (누가 실제 만들었는지) 정보만 제공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제조원 정보 노출로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에서 히트친 ‘베리썸 웁스 마이 립 틴트팩’이 대표 사례다. 코스메랩이 판매하는 이 제품은 국내 중소 제조사가 생산했는데, 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자 중국 화장품업체 모리채가 해당 제조사에 연락해 비슷한 제품을 만들었다. ‘립 타투틴트’라는 이름으로 겉포장까지 비슷하게 해 중국에서 팔자 중국 유통업체들은 자국 제품으로 매장 구성을 바꿔버렸다.
갈등으로 법안 상임위 상정도 못해
세계 1위 화장품 편집숍인 세포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프랑스 영국 체코 등 세포라 유럽 매장에서 ‘메디힐’ ‘닥터자르트’ 같은 한국 브랜드의 마스크팩이 잘 팔리자 세포라가 한국 제조사에 연락해 자체 브랜드(PB) 제조를 의뢰한 것이다. 세포라 유럽 매장들엔 메디힐, 닥터자르트 등이 빠진 자리에 ‘메이드 인 코리아 마스크팩’이라며 ‘세포라’ 브랜드명을 단 마스크팩이 대신 진열됐다.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는 “선진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선 제조원을 ‘영업기밀’로 간주해 표기하지 않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열심히 수년간 연구개발해서 어렵게 해외에 진출해도 경쟁사가 너무 쉽게 제조원에 연락해 제품을 베끼는 것이 현행 제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대형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들은 “제조원을 표기하지 않으면 작은 제조사들은 점점 어려워지다가 결국 망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콜마나 코스맥스처럼 이미 지명도를 갖고 매출 1조원이 넘는 회사는 문제가 없겠지만, 제조원 표기로 인해 ‘광고 효과’를 보는 작은 제조사는 의무표기제가 없어질 경우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양측 공방은 날로 첨예해지고 있다. 290여 개 회원사가 가입돼 있는 대한화장품협회를 포함해 경기, 부산, 인천, 제주 등 7개 지역별 화장품 단체들은 자율표기제로 바꿔 달라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법 개정 찬성 의견을 전달했다. 제조사들도 협회 움직임에 대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첨예한 공방으로 이 법안은 해당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아직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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