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공약을 지키고, 시민과의 접점을 늘려 ‘소통’을 강화하는 행동은 그 자체로는 분명 평가해줄 만한 일이다. 하지만 국민이 북한군에 피살되고, 사상 최악의 전·월세 대란이 벌어지고, 코로나를 빌미로 과도하게 기본권이 제약되는 등 ‘큰일’이 벌어졌을 때는 왜 이처럼 국민과 적극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주요 국정 현안에는 침묵하거나, 뒤로 물러나 있다가 등산로 개방 같은 홍보성 행사에는 발 벗고 나서는 대통령의 모습을 국민들이 적절한 지도자상(像)으로 삼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도 일괄 개방이 아니라 2022년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등산로가 열리는 만큼, 그때마다 세간의 눈길을 돌리는 ‘쇼’로 비칠 여지도 없지 않다.
대통령이 사회적 파장이 큰 이슈에선 구중심처(九重深處)로 사라져 침묵하다가, 좋은 이미지를 만들 만한 사안에는 ‘이벤트’로 분위기 반전을 꾀한다는 지적은 정권 초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대통령과 구면인 지지자를 일반 시민으로 둔갑시켜 ‘깜짝 모임’을 연출했던 맥줏집 대화, 6·25전쟁에서 전사한 국군 147구의 유해를 공중급유기에 투사하는 영상쇼의 소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은 ‘6·25 70주년 기념행사’,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수많은 사람을 모아놓은 채 질병관리청장 임명장 수여식을 강행하던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전임 정권의 ‘불통’을 비판하며 집권에 성공했다. 그런데도 실제 국민과의 ‘소통’ 실적은 영 변변찮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은 폐기됐고, 올 들어 대통령 기자회견은 신년회견과 취임 3주년 회견 단 두 차례에 불과했다.
문 대통령의 각종 대외활동이 시중에서 ‘쇼’로 폄훼되는 것은 정석대로 민의(民意)를 직접 듣고 각종 정치·사회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눈길을 끄는 화려한 행사로 이미지를 화장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 회복에 절실한 것은 북악산 철문을 여는 ‘연출’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에 진정성 있게 귀 기울이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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