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국제정치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빌리면, 합종은 힘으로 맞서는 세력균형(balancing)이고, 연횡은 힘을 좇는 편승(bandwagoning)이다. 기존의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모두가 기본적으로 직면하는 전략적 선택지다.
편승 전략의 치명적 결과가 역사적 기억에 각인된 중국에서 편승은 처음부터 선택지가 아니었다. 언젠가 힘이 길러지면 굴기해 패권국가에 도전하게 돼 있었다. 우선은 내부적으로 힘을 길렀다. 6·25전쟁에서 미군의 엄청난 화력을 경험했던 마오쩌둥은 “굴을 깊게 파고 식량을 많이 비축하되 결코 패권을 입에 올리지 말라”고 했다. 개혁개방으로 상당한 발전이 있었지만 덩샤오핑은 여전히 “빛을 감추고 새벽을 기다리다 보면 뭔가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유훈을 남겼다.
은인자중하라는 경고는 한동안 지켜졌다. 하지만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 이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중국의 대외전략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분기점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이었다.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는 ‘신형대국관계’를 제안했다.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지 않을 테니 미국도 중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함으로써 상호 협력해 윈윈하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대등한 관계를 요구한 것이다.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 모두를 수용할 만큼 넓다는 얘기도 했다. 태평양을 양분해 동쪽은 미국, 서쪽은 중국의 영향권으로 삼자는 대담한 요구였다.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과 인공섬 건설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렇긴 해도 최근까지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는, 이른바 경성의 세력균형은 아슬아슬하게 피해왔다. 소프트 파워나 국제기구를 통한 연성의 세력균형에 무게를 뒀다.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맞대응한다는 모양새만 지켰지 내용에서는 대폭 양보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은 미국에 대놓고 맞서는 듯한 모습이다. 단적인 예가 전례없는 규모와 논조로 벌이는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운) 전쟁 띄우기다. 7월엔 1956년 제작된 영화 ‘상감령(上甘嶺)’을 CCTV를 통해 방영했다. 중국은 1952년 철원 오성산의 저격능선에서 43일간 벌어진 이 전투에서 한·미 연합군에 대승했다고 선전한다. ‘평화를 위하여’라는 6부작 항미원조 다큐멘터리도 방영했다. 또 ‘금강천’이라는 새 영화를 개봉했고 40편짜리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의 방영을 앞두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진핑의 말이다. 지난달 23일 ‘항미원조전쟁’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시 주석은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항미원조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기….” “정전협정은 항미원조전쟁의 위대한 승리다. 제국주의는 다시 중국을 침략하지 못하게 됐다.”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은 시공간을 넘어 계승돼야 한다. 애국주의의 기치 아래 한마음으로 협력해 세계가 중국의 힘을 건드릴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중국이 이렇게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이면 미국의 선택지도 좁아진다. 일각에서는 3일 있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승리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기의 ‘전략적 인내’로 회귀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빳빳이 대들면 바이든도 별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은 정면충돌로 나아가고 있다. BTS는 이 대결의 부수적 피해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과연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미·중 갈등에 대비해 신설한 외교부 전략조정지원반이 지난 1년간 생산한 기밀문서는 코로나 외교 방안 단 한 건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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