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내려온다 / 범이 내려온다 / 송림 깊은 골로 / 한 짐생이 내려온다.”
판소리의 한 구절이다. 그런데 왠지 클럽에서 흘러나올 법한 4박자의 강렬한 비트가 느껴져 몸이 절로 들썩인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독특하고 강렬한 춤사위에 웃음이 나면서도 따라 하고 싶어진다.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한국 홍보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에 나오는 음악과 춤 얘기다.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의 조회 수는 3억 뷰에 달한다. 영상엔 국악 밴드 ‘이날치 밴드’가 판소리 ‘수궁가’를 기반으로 만든 노래 ‘범 내려온다’가 흘러나온다.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노래에 맞춰 전국 관광지를 돌며 신명 나게 춤을 춘다. 이 영상은 국내 10~30대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매일 이 노래를 듣고 영상을 본다는 의미로 ‘1일 1범’, 전통문화지만 감각적이고 개성이 넘친다는 의미로 ‘조선의 힙(hip)’이란 말도 만들어졌다.
이런 움직임은 다양한 장르에서 두드러진다. K팝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은 노래 ‘아이돌’에 굿거리장단을 담았다. 삼고무, 부채춤 등 전통춤을 접목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BTS 멤버 슈가는 ‘대취타’를 선보였다. 대취타는 왕이 행진할 때 쓰는 전통 군악이다. 뮤지컬계에서도 이 같은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국악과 힙합을 결합한 뮤지컬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은 지난해 초연에도 매진 행렬을 벌였다.
아무리 오랜 시간 견고하게 자리했던 문화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긴 어렵다. 새로운 시대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문화적 유전자는 도태된다. 우리의 전통은 그나마 그 가치를 잊지 않고 지켜나가려는 사람들이 있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긴 하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전통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과제로만 치부해 더 이상의 발전은 어려웠다는 점이다.
틀을 깨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유분방함’이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유명 안무가 김보람이 예술감독을 이끌고 있는 단체지만, 무대 위에 안주하지 않았다. 무대 밖으로 나가 길 위에서 춤을 추며, 전통과 현대를 가로지르는 강렬한 동작들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발전시킨 주체가 양반들이 아닌, 저잣거리에서 마음껏 흥을 발산하며 신명 나게 놀았던 백성들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오래된 씨앗은 생명의 싹을 내부에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다만 새 시대의 토양 위에 뿌려져야 한다.”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한 말이다. 우리 전통의 싹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발견되고 뿌려지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 생명의 싹을 찬란하게 피워낼 다음 승자는 누구일까. 이제 그 후속 주자의 탄생이 기대된다.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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