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은 도입 목적 자체가 ‘부족한 아파트의 공정한 배분’에 있었다. 넘쳐나는 수요가 없었다면 사라졌을지 모르는 제도지만, 시세보다 싼 값에 집을 갖고 싶어하는 수요자들의 욕망과 더불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근로자 10명 중 8명이 월급으로 5만원 이하를 받던 시절, 여의도 모델하우스 옆에서 이뤄진 목화아파트 공개추첨엔 현금 2억원을 싸들고 와 한꺼번에 100가구를 신청한 사람도 있었다. 1977년 9월 있었던 반포주공 청약에는 산아(産兒)제한 시책에 맞춰 도입된 불임(不姙)시술자 우대를 받기 위해 시술을 받고 온 사람들이 넘쳤다. ‘로또 아파트’ 청약 열기가 40여 년 전이라고 해서 지금보다 덜하다고 보기 어려운 셈이다.
아이러니인 것은 무주택자들이 더 쉽게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에 손댔다가 되레 청약문(門)이 ‘바늘구멍’이 돼버린 흑역사가 반복돼 온 점이다. 분양가 상한제가 대표적 사례다. 노무현 정부가 2005년 공공택지에 상한제를 도입해 분양가를 억누른 뒤 다음해 경기도 판교신도시 청약에 광풍이 불어닥쳤다. 2006년 3월 동시 분양한 민간 아파트 3300여 가구에 청약통장 45만여 개가 쓰였고, ‘풍성신미주’의 경쟁률(683 대 1)은 아직까지 ‘사상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된 8월 이후 경쟁률이 치솟아 지난달엔 서울 및 경기도 남양주의 3개 단지 평균 경쟁률이 200 대 1을 넘어섰다.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어제부터 시작된 경기도 과천 지식정보타운 청약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주변의 전용 84㎡ 아파트가 19억원에 팔렸는데 같은 면적이 8억원대에 나왔으니, 당첨만 되면 앉은 자리에서 10억원 넘게 벌 수 있는 판이다. 지방에는 미분양이 넘쳐난다지만 또 한 번 난리가 불가피해 보인다.
대체 언제쯤이면 이런 광풍이 사라질까. 인구의 절반 이상(약 2600만 명)이 청약통장에 가입한 현실을 인정하고 ‘투기 프레임’을 버리지 않는 한 이번 정부에선 어려울 것이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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