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보상보다 정부 중재가 더욱 효과적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한국형 자동차 레몬법에 따라 소비자가 교환 및 환불을 받기 위해 신청한 중재요청은 모두 528건이다. 하지만 교환 또는 환불이 이뤄진 사례는 전혀 없다. 제도 시행 2년이 지났지만 어떤 소비자도 레몬법 혜택을 받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 중재 요청 후 '취하'한 경우도 98건에 달한다. 이는 정부의 중재보다 판매사와 소비자 간 개별 합의가 오히려 활발해졌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교환된 경우가 11건이며 환불은 15건, 추가 수리는 33건이나 이뤄졌다.
사실 자동차를 교환 또는 환불받는 것은 쉽지 않다. 값이 비싼 만큼 판매사 또한 손해가 적지 않아서다. 이에 따라 문제가 생기면 가급적 무상수리를 통해 해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여러 제도적 장치를 통해 소비자 보상 방안을 마련한 것은 그만큼 소비자가 겪는 피해도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쟁도 끊이지 않는다. 앞선 사례처럼 일부는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중재로 넘어가기 일쑤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도를 악용하는 블랙컨슈머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중재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활용해 일방적인 불만을 제기하고 기업의 개별 합의를 유도한다. 이를 위해 때로는 과장됐거나 있지도 않은 사실을 퍼뜨리고 심지어는 별도로 보상받은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정식으로 중재 등을 요청한 사람만 바보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기업이 제품을 구매한 고객을 블랙컨슈머로 여기는 사례는 흔치 않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거나 제도를 벗어난 보상을 요구할 때는 기업도 곤혹스럽다. 실제 출고된 지 16개월이 지나 서비스센터를 방문한 소비자가 차량 교환을 요구하며 2개월 동안 10회 이상 서비스를 받은 경우도 있다. 엔진 출력 부족, 엔진과 변속기 이음, 소음과 진동에 대한 불만이었지만 점검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확인해보니 해당 소비자는 과거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자동차를 교환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블랙컨슈머였던 셈이다.
블랙컨슈머에 시달리는 업체는 승용차 뿐만이 아니다. 상용차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상용차 업계는 소비자 숫자가 적은 만큼 정보 교환도 활발한 시장이다. 고객의 입소문에 영업이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 같은 구조를 잘 파악한 일부 업계 종사자들은 '아니면 말고' 식의 악의적 소문을 만들며 때로는 무리한 요구를 일삼기도 한다. 심지어는 일부 보상을 받은 후 시간이 흐르면 다른 이유를 들어 별도 추가 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자 해당 기업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예 접촉 자체를 거부한 사례도 있다. 블랙컨슈머와 협의를 하는 것 자체가 대다수 고객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끼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제품 하자 등 소비자 불만과 기업의 자체적인 블랙컨슈머 규정에 대해 제도적인 중재 방안이 마련돼 있는 만큼 공정하게 시시비비가 가려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이 선별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라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소비자 보호를 위해 도입한 한국형 레몬법의 실효성을 높이라는 조언인데, 그래야 누구는 보상받고 누구는 받지 못하는 일이 사라질 수 있다. 중재 요청만 쌓이고 결론을 내지 못하는 국토부의 하자심의위원회가 제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한국형 레몬법은 자동차가 소유자에게 인도된 날로부터 1년 이내 또는 주행거리 2만㎞ 이내에 중대 하자로 2회, 일반 하자로 3회 이상 수리 후 동일 하자가 재발할 경우 차주는 자동차를 인도받은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제조사에게 신차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해당 제도는 신차 구매 때 교환이나 환불 보장 등을 서면 계약에 포함해야 효력이 발생하는데 국내 대부분의 제조사가 시행 중이다. 블랙컨슈머로 여겨지는 것 자체가 억울한 사람도, 지나친 요구로 기업이 골머리를 앓는 것도 중재를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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