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의 진격… '빼빼로데이'도 점령한 곰표의 힘

입력 2020-11-04 15:29   수정 2020-11-04 15:39


컬래버는 이제 식상하다. 캐릭터를 성의 없이 가져다 새긴 에코백, XX아이스크림과 XX과자의 조합, 명품과 스트리트 패션의 결합…. 4~5년 전부터 소비재 시장에서 쏟아져나왔다. 안 하는 곳이 없고, 그러다 보니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소비자들은 뻔한 컬래버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1년 전쯤 이 시장을 뒤흔드는 곰 한마리가 나타났다. 68년 된 밀가루 브랜드 곰표의 캐릭터가 길거리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흰색 패딩 위에 쓰여진, (약 500m앞에서도 눈에 띌 것 같은) '곰' '표' 두 글자. 요즘 리테일 시장에서 롱런하고 있는 컬래버 아이템 북극곰은 패딩에 이어 맥주, 팝콘, 나초, 화장품까지 내놓는 것마다 인기 상품이 되고 있다.

대박 상품의 수명이 3개월도 채 못 넘기는 요즘 소비재 시장에서 곰표는 몸값이 가장 높다. 1년 중 빼빼로의 매출 70%가 발생하는 11월 11일 빼빼로데이를 맞아 '빼-곰'이라는 이름의 막대 과자로도 변신했다. 빼-곰의 카피는 '빼빼로 먹곰 (곰표) 신나곰'.
◆곰처럼 느린 걸음의 승리
곰표는 대한제분의 밀가루 브랜드다. 기업간 거래(B2B) 위주였던 제조사가 브랜드 마케팅에 나선 건 2018년 9월. 본격적인 2세 경영이 시작되며 오래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 곰표 베이커리하우스(옛 레트로하우스)를 열었다. 대한제분은 여기서 패딩뿐 아니라 얼굴에 바르는 쿠션, 핸드크림, 치약 등을 판매했다. 곰표 머그컵 등이 탄생한 굿즈 공모전도 화제를 모았다. CJ CGV와 손잡고 곰표 밀가루 포대에 팝콘을 담아 팔기도 했다.

곰표 밀가루는 중장년층에겐 익숙한 대표 밀가루 브랜드이지만 2030에겐 '잘 모르는 낯선 회사'였다. 밀가루 매출 약 3000억원 중 100억원 정도만 일반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 팔리고, 나머진 기업 간 거래에서 나왔다. 대한제분 내부에선 2030 세대가 곰표라는 브랜드를 모르면 장기적으로 기업 거래처로부터 외면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곰표의 변화를 이끈 건 창업자 이종각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건영 대한제분 회장이다. 2016년 취임 첫해 기업이미지(CI)와 곰표 브랜드 이미지(BI)를 바꿨다. 컬래버 외에도 대한제분 자회사인 반려동물 사료기업 우리와 카페 아티제, 카페 포제를 운영하고, 펫푸드 기업 대산앤컴퍼니를 인수하는 등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사업 확장에 공들이고 있다.

◆말표에 골뱅이 맥주까지 팔로어 양산
곰표의 브랜드 전략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곰표 패딩이 반짝 유행에 그치지 않도록 한 제품은 CU와 대한제분이 손잡고 출시한 곰표 밀맥주. 지난 5월 출시된 지 5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 개를 넘어섰고, 품절 사태도 이어지고 있다. 세븐브로이 양조장에서 만드는 맥주가 인기를 끌면서 안주로 함께 출시한 '곰표 팝콘' '곰표 나초' 등도 매출이 증가세다.

곰표 맥주의 흥행으로 '말표 맥주' '유동골뱅이 맥주' 등도 나왔다. 11월과 12월이 맥주 시장에선 비수기인데 이색 컬래버로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유동골뱅이는 세븐일레븐과 손잡고 비엔나 라거 스타일의 맥주를 출시했다.

GS25는 진주햄의 천하장사 소시지 디자인을 동화약품의 에너지 드링크 생생톤과 롯데제과 에너지바에 적용한 제품을 내놨다. GS25가 진주햄에 이 기획을 제안했고, 진주햄이 이를 받아들여 성사됐다.

GS25는 "천하장사 브랜드가 가진 힘을 상징하는 로고, 오랜 전통이 가지고 있는 친숙한 이미지가 관련 상품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상품 개발 협의를 제안했다"며 "최종적으로 힘·영양 등과 연관 있는 에너지 음료, 에너지바 상품 개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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