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래버는 이제 식상하다. 캐릭터를 성의 없이 가져다 새긴 에코백, XX아이스크림과 XX과자의 조합, 명품과 스트리트 패션의 결합…. 4~5년 전부터 소비재 시장에서 쏟아져나왔다. 안 하는 곳이 없고, 그러다 보니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소비자들은 뻔한 컬래버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1년 전쯤 이 시장을 뒤흔드는 곰 한마리가 나타났다. 68년 된 밀가루 브랜드 곰표의 캐릭터가 길거리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흰색 패딩 위에 쓰여진, (약 500m앞에서도 눈에 띌 것 같은) '곰' '표' 두 글자. 요즘 리테일 시장에서 롱런하고 있는 컬래버 아이템 북극곰은 패딩에 이어 맥주, 팝콘, 나초, 화장품까지 내놓는 것마다 인기 상품이 되고 있다.
대박 상품의 수명이 3개월도 채 못 넘기는 요즘 소비재 시장에서 곰표는 몸값이 가장 높다. 1년 중 빼빼로의 매출 70%가 발생하는 11월 11일 빼빼로데이를 맞아 '빼-곰'이라는 이름의 막대 과자로도 변신했다. 빼-곰의 카피는 '빼빼로 먹곰 (곰표) 신나곰'.
곰표 밀가루는 중장년층에겐 익숙한 대표 밀가루 브랜드이지만 2030에겐 '잘 모르는 낯선 회사'였다. 밀가루 매출 약 3000억원 중 100억원 정도만 일반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 팔리고, 나머진 기업 간 거래에서 나왔다. 대한제분 내부에선 2030 세대가 곰표라는 브랜드를 모르면 장기적으로 기업 거래처로부터 외면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곰표의 변화를 이끈 건 창업자 이종각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건영 대한제분 회장이다. 2016년 취임 첫해 기업이미지(CI)와 곰표 브랜드 이미지(BI)를 바꿨다. 컬래버 외에도 대한제분 자회사인 반려동물 사료기업 우리와 카페 아티제, 카페 포제를 운영하고, 펫푸드 기업 대산앤컴퍼니를 인수하는 등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사업 확장에 공들이고 있다.
곰표 맥주의 흥행으로 '말표 맥주' '유동골뱅이 맥주' 등도 나왔다. 11월과 12월이 맥주 시장에선 비수기인데 이색 컬래버로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유동골뱅이는 세븐일레븐과 손잡고 비엔나 라거 스타일의 맥주를 출시했다.
GS25는 진주햄의 천하장사 소시지 디자인을 동화약품의 에너지 드링크 생생톤과 롯데제과 에너지바에 적용한 제품을 내놨다. GS25가 진주햄에 이 기획을 제안했고, 진주햄이 이를 받아들여 성사됐다.
GS25는 "천하장사 브랜드가 가진 힘을 상징하는 로고, 오랜 전통이 가지고 있는 친숙한 이미지가 관련 상품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상품 개발 협의를 제안했다"며 "최종적으로 힘·영양 등과 연관 있는 에너지 음료, 에너지바 상품 개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