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한 곳서 5~10년 근무한다…"재판효율 높여" vs "향판 부활"

입력 2020-11-04 17:16   수정 2020-11-05 00:27

법관을 한 지역에서 5년 이상 일하게 하는 ‘법관 장기근무제도’가 내년 법원 정기인사에서 본격 시행된다. 재판의 연속성·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2014년 법관들의 지역계속근무제도가 폐지된 지 6년 만이다. 이번에는 서울의 일부 법원도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판사들이 한 지역에 오래 있으면 토착세력과의 유착한 향판 등 부패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21년 정기인사부터 법관 장기근무제가 시행된다. 이 제도는 서울권을 포함해 경인권, 지방권 등 총 43개 법원에 적용된다. 구체적으로 △서울권은 서울남부·북부지방법원 등 2곳 △경인권은 의정부지법·인천지법 부천지원, 여주지원 등 6곳 △지방권은 춘천지법, 대전지법, 대구지법 등 35곳이다. 서울행정법원과 서울회생법원은 제외됐다. 고등법원의 부장판사 및 판사는 지방법원 장기근무를 신청할 수 없다.

약 3000명의 판사는 매년 2월 정기인사철이 되면 2~3년 주기로 전국 법원을 돌며 순환 근무한다. 그에 비해 장기근무제는 판사들이 인사권을 쥔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래 걸리는 재판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기근무 기간은 서울권 5년, 경인권 7년, 지방권 7~10년으로 정해졌다. 중간에 장기근무를 해제하거나 다른 법원으로 이동할 수 없다. 다만 해외 연수와 휴직 기간은 장기근무 기간에 포함된다.

문제는 법관과 지역 토착세력의 유착을 막을 예방책이다. 지난 9월 열린 대법원 사법행정자문회의(8차)에선 “장기근무제도 시행 시 법관의 책임을 강화할 방안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고, 이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를 법관인사분과위원회에 회부한다”고 결정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논의가 끝난 뒤 결과가 나오면 자문회의에 보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행정처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 지역계속근무제가 폐지된 이유는 ‘황제노역 사건’과 같은 판결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장기근무제도를 시행한다면 법관의 윤리성 등을 보완할 조치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제노역 사건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벌금 245억여원을 50일 노역으로 탕감받은 사건이다. 당시 판결을 맡았던 광주고법 부장판사는 대주그룹과 아파트 매매를 한 사실이 드러나 큰 비난이 일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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