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나에게 집은 무엇일까" '인터뷰 집'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했습니다.
투자 가치를 가지는 상품, 내가 살아가는 공간. 그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 집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오를만한 아파트를 사는 것이 나쁜 건 아닙니다.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도 죄악은 아니겠죠. 하지만 누구나 추구해야하는 절대선도 아닐 겁니다.
기사를 통해 어떤 정답을 제시하려는 게 아닙니다. 누가 옳다 그르다 판단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각자가 원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나누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집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인터뷰는 나이, 직업, 학력, 지역 등에서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려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씀하시고 싶은 분, 내 주변에 사람을 추천해주시고 싶으시다면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직접 찾아가 만나겠습니다.
프리랜서 작가인 곽민지 씨(35)는 인터뷰 내내 거침이 없었다. 민감하지 않을까 망설이며 던진 질문에도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명확해 보였다. 그런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은 '나만의 삶, 그리고 그와 어울리는 집'이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비혼주의자다. 연애는 한다. 다만 결혼이란 제도로 자신을 묶고 싶진 않다고 했다. 집을 사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프리미엄'을 받고 팔겠다며 청약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이기적'이란 생각을 했다. 집이 꼭 필요한 사람들의 기회를 뺏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친구, 술, 폴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6일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곽 씨를 만났다. 집에 꼭 필요한 것 세 가지를 꼽아달라고 하자 "직접 만든 테이블, 와인셀러, 폴 만 있으면 될 거 같다"고 답했다. 친구, 술, 취미.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는 해방촌에 있는 작은 빌라 3층에 살고 있다. 직접 목공으로 만든 테이블에서 일을 하고,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논다. 매일 같이 폴 댄스도 추러 간다. '난 슬플 땐 봉춤을 춰'라는 책도 썼다. 행복한 비혼라이프를 소개하는 팟캐스트 '비혼세'도 진행한다. 집에 있는 제품 중 가장 잘 샀다고 생각하는 것은 '방수 소파'다. 이유를 묻자 그는 "친구들이 술마시다 토해도 물로 닦아 낼수 있다"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소파를 선택하는 그만의 기준이었다.
올해로 자취한지는 5년차다. 부모님이 수도권에 사시는 '탓'에 독립선언은 쉽지 않았다. '결혼도 안한 딸'이 밖에 나가사는 걸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았다. 회사 야근이 많다는 핑계를 대고 홍대 앞에 원룸을 마련했다. 처음엔 퇴근이 늦는 날에만 원룸에서 잤지만 차츰 집에 들어가는 날을 줄여갔다. 계약이 만료된 후 다시 본가로 들어가는 대신 은근슬쩍 독립을 추진했다. 부모님 눈치를 보지 않고 본인이 살고 싶던 집을 골랐다. 그 집이 바로 지금 살고 있는 곳이다.
해방촌에 살기로 한 것은 순전히 술집 때문이었다. 단골 술집이 해방촌에 있었다. 자주 오다 보니 동네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술집에서 일도 할 수 있고 처음 본 사람들과 얘기도 하는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아무 때나 나가도 술을 먹으면서 일할 수 있는 술집, 카페들이 많은게 좋았다"고 설명했다.
집을 고를 땐 방 2개 이상이란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을 찾았다. 방송 작가 겸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곽씨는 주로 집에서 작업을 한다. 이 때문에 휴식 공간과 업무 공간을 분리가 절실했다. 방 2개 중 하나는 아주 작아서 침대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곽 씨는 "침실엔 TV 등 다른 가구가 하나도 없이 완전히 휴식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며 "손님도 그 방엔 못들어가고, 나 조차 업무시간엔 출입금지다"라고 말했다.
◆빌라 산다고 불행하지 않아요
여자 혼자 빌라에 살면서 겪는 어려움도 많다. 안전이 가장 큰 걱정이다. 택배를 받을때 남자 이름을 적고, 자동차에 전화번호도 차량 전용 번호를 적어뒀다. 혹시 빈집으로 알고 누가 침입할까봐 조명도 24시간 켜놓는다. 주변의 동정어린 시선도 불편한 점 중 하나다. "엄마는 처음에 제가 빌라에 사는 것을 안타까워 하셨어요. 아파트 살 여력이 없으니 빌라에 산다는 거죠. 빌라가 좋다는 말은 '정신승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아요. 지금은 오해가 풀렸지만요. 엄마 외에도 아파트에 살아야만 행복한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안전에 대한 불안, 남들의 따가운 시선. 그럼에도 빌라를 고집하는 것은 자유로움 때문이다. "평생 아파트에 살았는데 너무 답답했어요. 마치 성처럼 외부와 분리된 곳이 아니라 문만 열고 나가면 동네와 통할 수 있는 곳에 살고 싶었어요."
편의시설, 역세권,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등 아파트의 장점으로 꼽히는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 밖이다. 오히려 그런 것들로 집 값만 비싸지는 것 같아서 달갑지 않다고 했다. 그는 "서울 시내 신축 아파트를 보면 평소 쓰지 않는 옵션이 모두 달린 비싼차 같다"며 "내가 쓰지도 않는 시설에 대한 추가비용을 내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4인 가구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가장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자리는 다 아파트가 들어온 탓에 막상 1인가구가 살만한 곳은 환경이 열악한 곳이 많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1인 가구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다양한 주거 형태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해진 길로 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집을 사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도 없다. 지금 버는 돈으로도 만족하고, 대단히 더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청약통장은 있지만 사용해본적은 한번도 없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청약을 넣으라는 말도 많이 하지만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요. 집이 필요하지 않은데, 청약을 넣는 건 정작 집이 절실한 다른 사람의 기회를 뺏는 것 같더라고요."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방송작가, 1인출판사 사장 등 다양한 직함으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그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GS칼텍스에서 일했다. 그때만 해도 결혼을 하고, 빚을 내서 좋은 지역에 아파트를 사고, 소비를 줄이며 빚을 갚는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곽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보니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제 주변엔 비혼도 많고, 동성부부도 있고, 프리랜서들도 많아요. 명문대를 졸업해서 대기업에 취업해 나이가 차면 결혼하고 출산하는 등 사회에서 말하는 모범적인 삶, 정해진 길을 꼭 걷지 않아도 된다는 걸 새로운 사람들을 보고 만나며 배웠어요."
집을 마련한다면 그는 '내 맘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집'을 사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 집은 공유 숙박시설처럼 꾸며서 친구들이 언제든 놀러와서 자고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가 꿈꾸는 집은 '술집 같은 집'이었다.
폴도 설치하고 싶다고 했다. 폴을 설치하기 위해선 천장에 구멍을 내고 공사를 해야하는데, 전세집에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랫집에 아기가 태어난 후 저녁에는 설거지도 안하고 조심해요. 단독 주택에 살면 이런 종류의 걱정은 안해도 되겠죠."
집을 사는 걸 나쁘게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 친구들이 집을 사려고 애쓰는걸 이해한다고도 했다. 그만큼 자신이 집을 사지 않고, 관심이 없는 것도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부동산에 관심 없는 사람을 철없고 한심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가치관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아파트 외에 사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서로 존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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