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이 제대로 수익을 못 내는 원인에 대한 진단은 모두 같다. 주식에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실적배당형’보다 정기예금 중심의 ‘원리금보장형’을 가입자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해 말 원리금보장형은 대기성자금을 포함해 89.6%나 된다.
정부가 지난달 3일 들고나온 ‘국민참여형 뉴딜펀드’도 퇴직연금을 염두에 둔다. 20조원 규모의 뉴딜펀드에 퇴직연금을 투입해 수익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손실이 발생했을 때다.
다른 한편,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내걸고 이번엔 ‘기금형’ 퇴직연금제를 도입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다. 노사 동수로 구성되는 ‘수탁법인(기금)’을 만들어 퇴직연금 자금을 직접 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지금은 은행, 증권사 등 금융회사만 가입자와의 계약에 따라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 자율적인 자금 운용이 가능해지는 만큼 수익률 높은 상품에 더 투자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업계의 이런 입장에 반해 경제단체의 하나인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기금형 퇴직연금제 도입에 지난 2일 반대 의견을 내놔 눈길을 끈다. 기금 운용에까지 노조가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데다 퇴직연금에 손실이 날 경우 궁극적으로 사업주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자면 ‘실적배당형’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데 금융업계와 정치권 모두 한목소리를 내지만 ‘손실 위험’에 대한 언급은 없다. 실제로 주식시장 상황에 따라 실적배당형은 손실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적배당형 수익률은 2019년 6.38%였지만 바로 1년 전인 2018년엔 -3.82%였다. 최근 라임·옵티머스 사태에서 불거진 자본시장의 투명성 문제도 가입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가입자들의 무지나 지나친 안정 추구 성향을 탓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금융 소비자인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투자를 꺼리는 요인이 뭔지 먼저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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